사대는 그만할 때가 됐다
이내
트럼프가 세계 200여개국, 80억 인류 앞에서 중대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범죄 현장 중계 화면을 실시간 지켜보며 환호했다. 그에 대한 비판은 소극적이다. 종이 비누곽이 된 UN은 목소리를 낮췄고 러시아, 중국을 제외한 주요국도 입을 다물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제1야당은 이재명 대통령과 마두로를 등치한다. 베네수엘라와 같은 꼴이 될 거란 저주를 퍼붓는다. 나경원이 그렇고 당 대변인들이 그렇다.
시민사회도 나뉜다. 극우 세력은 트럼프와 미국의 군사 인프라에 열광한다. 이재명도 빨리 처단해달라고 나선다. 정치 관여도가 낮은 시민 중 일부는 독재자 마두로를 축출했으니 잘한 일이라고 한다. 이런 전도된 여론은 언론이 만들고 있다. 이른바 주요 언론은 트럼프의 범죄행각에 일제히 오목렌즈를 들이댄다. 정작 써야 할 돋보기는 범죄를 둘러싼 가십성 얘깃거리에 탕진한다. 트럼프 범죄의 심각성과 앞으로 전개될 파국적 전망을 파헤친 언론은 없다. 대한민국에 끼칠 경제적 영향 따위를 언급하는 게 그나마 심층보도다. 대한민국 시민으로서는 트럼프 범죄 소식을 이런 언론에 기대 볼 수밖에 없다. 그 유일한 창구가 의도된 오목렌즈다.
이른바 언론과 기득 정치세력은 왜 이러는 걸까. 근본적인 이유는 이 땅의 보수참칭 수구 기득 계층에 있다고 본다. 이들 수구의 뿌리는 1000년 가깝게 만들어진 사대주의 유전자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첫 사대는 고려 충렬왕이 시작이었다. 그는 고려 세자 신분으로 볼모 잡혀있던 몽골에서 쿠빌라이에게 줄을 섰다. 마침내 쿠빌라이가 정권을 잡고 원을 개창하자 황제의 사위가 되길 원했다. 왕실의 안녕과 만세를 위해서였다.
쿠빌라이는 정실의 딸이 모두 혼인했다며 거절했으나 고려 세자의 간청에 측실의 딸을 준다. 이후 고려는 원 황실의 부마국으로서 특별 대우를 받게 된다. 하지만 특별 대우는 고려 왕실과 소수 귀족까지였다.
고려의 백성은 왕실과 몽골의 이중 수탈에 시달렸다. 원의 쇠퇴기 이같은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이성계의 쿠테타로 물거품이 된다. 조선은 명에 대한 사대를 국가 이념으로 내세웠다.
이후 사대의 존엄은 청나라를 거쳐 일본, 미국으로 이어졌다. 800여년 동안 거침없이 이어진 사대는 한국인의 유전자에 각인 됐다고 본다. 이런 유전자는 이 땅의 지배층이 됐을 때 강하게 발현된다.
조선일보는 얼마 전까지 ‘밤의 대통령’이란 권세를 누렸다. 대한민국의 대표언론을 자부하며 정재계 위아래를 넘나들었다. 한때 정치(精緻)한 문법과 미문으로 언론계의 형님 노릇을 해왔다. 언론환경 변화로 형해화한 조선일보와 그 아류 언론은 그러나 아직 남은 힘을 사대에 쏟아붓는다. 그들의 유전자에 사대가 각인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대의 존엄이 흔들릴수록 기득의 방어기제가 더 강하게 작동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두고 극우는 ‘중국의 속국’이 된다고 떠든다. 극우는 조선일보의 뿌리에서 만들어진 자양을 빨아먹고 자란다.

대한민국은 고려 말 위화도와 같은 자리에 서있다. 여전히 회군의 나팔을 준비하는 세력과 앞으로 나가자는 세력이 부딪힌다. 그 삐걱이는 파열음을 트럼프 범죄를 보는 각각의 시각에서 듣는다.
사대는 그만할 때가 됐다. 경주 천마총 금관 가품과 베이징에서의 셀카 놀이는 외줄타기의 한 장면이다. 홀로서기를 위해 양쪽의 적 사이에서 추는 외로운 춤사위다.
그 춤을 보며 쿠빌라이와 트럼프와 마두로와 조선일보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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