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제80호> 글쓰기의 재정의_정미진(인권연대 숨 일꾼)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2.

지난 6월 지역에서 청년활동을 마무리하며 청년정책토론회를 진행했다. 청년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다. 준비된 발표가 끝나고 이어진 질문시간에 낯익지 않은 여성참여자가 자신의 창업아이디어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녀는 전자책에 관한 창업을 고민하고 있으며 자신이 판단하기에 지역사회에도 비전 있는 아이디어가 될 것 같은데 정작 관련된 무언가를 시작할 때 특별한 지원이나 선례가 전무하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청주가 직지의 도시라는 이미지까지 만들어져있는데 아쉽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왜 전자책을 하고 싶으세요?’ 라는 궁금증보단 당연히 안 되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잊힌 그녀의 질문은 몇 개월이 지나 내 머리를 후려치는 경험으로 다시 찾아왔다. ‘그 사이 몇 개월을 잠시 설명하자면 지역에서 해오던 활동을 마무리하고 연수라는 이름으로 서울살이를 마음먹은 시간이었다. 그맘때 송별회를 핑계로 모임 하나를 결성했고 모임의 구성원은 토론회를 계기로 만난 또래였다. 알고 지내던 사람부터 처음 보는 사이까지 우연한 만남이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을 주고받는 자리였다. 서울살이 와중에도 두 번의 모임을 더 진행했고 자연스럽게 새롭게 보고 들은 것들을 한 식탁위에 올려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다.

 

세 번째 모임 때 토론회의 그녀는 나에게 한 번 더 자신의 창업고민을 털어놓았다. 모임에서 한참 뜨거운 대화를 마무리 한 후의 일이였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와 같은 고민을 하는 자리였는데 이제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기사의 내용들조차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 많은 인터넷 기사들은 돈 벌기(광고)에 적합한 글들뿐이며 별 의심하지 않았던 주요언론들 마저 자본과 관계되어있고 자본에 심기에 거슬리지 않는 정보만을 글로 쓴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기사를 비판하는 우리도 이미 자본이 만들어낸 이해관계의 수레바퀴 안에서 움직일 뿐이라는 회의감까지 쏟아내었다. 그러고 나니 이 고민을 글로 남겨야겠다. 다른 곳에서는 다루지도 않을 이야기지 않느냐의견이 모아지던 참이었다.

 

그녀는 일전에 토론회에서 이야기했던 전자책사업을 <기억을 남기는 1인 출판사>로 풀어 나가볼까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가 방금 나눈 이야기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그저 그런 개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고민을 그대로 남겨보고 싶어 했다. 자신은 영화를 공부하고 대안교육 현장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왔는데 그 현장에서 마주했던 현실을 자신의 미래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아이디어뿐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어쩌면 나는 기록’, ‘글 쓰는 행위에 편견을 가지고 있던 것일까. 그녀의 창업고민에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기뻐하는 내 자신을 보며 기쁨과 동시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왜 나는 3개월 전 토론회 자리에서 그녀의 같은 질문을 반갑게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궁금했다. 그 사이 나에게 글 쓰는 일의 의미가 바뀌기라도 한 걸까. 잘 팔리는 글이나 남들이 인정해주는 글만이 존재에 의미가 있다고 여긴 것은 아니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글 쓰는 행위에 나는 무슨 편견을 가졌던 것일까 고민해보았다.

 

그녀가 전해준 이 당황스러움 속에서 나는 나의 글쓰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남겨지는 글의 가치는 누군가 이미 정해놓은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동의하는 목적으로 글쓰기의 의미를 다시 정의 해보려한다. 개인의 그저 그런 삶의 고단함, 고민을 글로 남기다 보면 나의 활동의 열쇠가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