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0일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 당했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로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파면 이유를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끝까지 승복하지 않았다. 측근을 통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정말 끝까지 제대로 밝혀서 책임을 밝혀야 한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을 파헤친 데는 언론도 큰 몫을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전까지 그럴싸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 언론도 오늘에 국정농단 책임을 피해갈 순 없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이봉수 교수가 <중립에 기어를 넣고는 달릴 수 없다>라는 책을 펴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시민편집인으로 쓴 칼럼을 모은 것으로 한국 진보언론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해서 꼼꼼하게 지적했다. 이봉수 교수는 이 책 세 번째 장 “ ‘귀태 박근혜 체제’ 낳은 건 언론 ” 이라는 부분에서 우리 언론의 박근혜 대통령 관련 보도의 문제점을 짚었다.
이미지 정치의 달인 박근혜 전 대통령
이봉수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미지 정치에 앞서왔고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언론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박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민생법안은커녕 법안 제출 건수와 출석 일수가 모두 꼴찌였지만 기자들이 뽑는 모범적 의정활동을 펼친 의원에게 주는 백봉신사상을 4년 내내 받았다고 한다. 이 교수는 또 박근혜의 메시지는 내면적 깊이나 한국 사회 주요 이슈에 대한 소신을 제대로 알 수 없을 만큼 단순한 것들이었는데도 언론이 제대로 비판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버지 후광효과를 최대한 누리면서 과오에 대해서는 얼버무리려 든다는 문제도 지적했다. 이봉수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보수 언론의 이미지 만들기와 진보언론의 직무태만이 만들어낸 합작품” 이라며 언론의 책임을 묻는다. 지금은 잠시 태도를 바꾸었지만 “형광등 백 개의 아우라”니 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 띄우기에 열심이던 보수 언론의 민낯도 생생하다.
이봉수 교수는 당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이미지 선거에 대해 이명박에 이어 정책 없는 메시아적 선동에 대중이 또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선거전 열망이 선거후 실망으로 바뀌는 것은 예정된 코스라며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의 행복을 추진하기는커녕 불행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메시아의 허상을 벗기고 실상을 말하는 언론의 역할이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해서일까. 이봉수 교수의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언론을 선전도구로만 인식한 박근혜 전 대통령
지난해 12월9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뒤 대통령 직무정지 처분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해 첫날 갑자기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기자들은 펜조차 들지 않고 기자간담회에 들러리를 섰다. 그 전에도 ‘질문하지 않는’ 청와대 기자단, 짜여 진 각본대로 진행하는 문제 등은 여러 차례 비난 받았다. 이봉수 교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책임을 따지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언론을 국정감시자가 아니라 자신의 동정을 보도하고 정책을 선전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언론을 기피하면 제도 자체가 치명적 타격을 입는다며, 정치와 행정을 비밀주의에 의존하면서 언론의 견제를 받지 않으면 비효율과 독재로 치닫기 쉽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언론을 기피하니 나오는 보도가 대부분 대통령 미화와 성과 위주 보도다. 대통령이 몇 개 국어를 한다느니, 패션외교를 펼쳤느니 하는 것이 화제가 됐을 뿐이다.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잘못한 게 많지만 세월호 사건에 대한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당시 언론보도도 정말 대 참사 수준으로 ‘기레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최고의 컨트롤 타워는 대통령 자신인데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가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던 당일 대통령이 집무실로 출근만 했어도 상황인식은 달랐을 거라는 헌법재판관의 지적은 타당하다. 이봉수 교수는 세월호 관련 외국 보도를 모니터링하면서 이번 기회에도 책임을 묻는 정치체제를 만들지 못하면 앞으로도 인재가 계속 터질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다며 우리 언론이 책임정치 구현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제를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을 읽는 내내 정말 이봉수 교수의 지적이 적확하게 맞았다는 것을 번번이 확인했다. 우리 언론이 이런 쓴 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컸다. 이 책은 언론모니터링을 하는 내게도 많은 자극을 줬다. 언론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다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데에 빛과 같은 역할을 모니터링을 통해서 할 수 있다는 가치를 다시금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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