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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수희씨와 책읽기(종료)

<제60호> 가족과 함께 하는 책읽기의 즐거움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3.

 

아가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사러 간 서점에서 <빨간머리 앤>을 만났다. 빨간머리 앤이 그림책으로도 나왔단다. 너무나 반가웠다. 서윤이도 좋아할까 궁금하고 설렜다. 집에 오자마자 <빨간머리 앤>을 꺼내 아이에게 읽어주었다. “아가, 이거 엄마가 어릴 때 무척 좋아하던 거다. 우리 함께 읽어볼까”. 다행히 아이도 좋아한다. 나는 내친김에 노래도 불렀다. “주근깨 빼빼마른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가사도 잊지 않았다.) 그날부터 매일매일 노래도 부르고 책도 읽는다. 아기와 함께 하는 행복한 마음이야 새삼스러울 것 없는데 빨간머리 앤을 함께 읽고 노래까지 부르니 가슴이 벅찼다. 이제 내 딸아이와 내가 무언가를 함께 좋아할 수 있겠구나. 그게 책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구나 싶다. 아주 오랜만이다. 연애할 때의 기분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연애 기분을 느낀 탓일까. 남편과 연애할 때 추억도 새삼 떠올랐고, 결혼 생활과 함께 했던 책 이야기도 하고 싶다. 남편과 나는 책 욕심이 닮았다. 결혼을 하니 서로 갖고 있던 책들 중에서 겹치는 책들이 있었다. 정리해야 하는데 아직도 못하고 있다. 오래전에 읽었던 앤 패디먼의 <서재결혼시키기>에도 결혼 5년 만에 부부가 서로의 책을 한데 섞으면서 나의 책과 그의 책이 아니라 우리 책이 되었다며 이제 진정으로 결혼을 한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결혼 하고 남편의 책을 보다가 적어 놓은 당시의 메모나 밑줄 그은 부분들을 읽노라면 몰랐던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듯 싶어 속으로 웃기도 하고 알면서도 모른 척 해주고 있다며 혼자서 으쓱해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신혼시절에 남편이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던 기억도 난다. 잠은 오는 데 책은 읽고 싶을 때 남편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남편이 먼저 읽어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남편은 종종 자신이 읽고 좋았던 부분을 읽어준다. 요즘은 뜸하다. 이제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보다 딸아이를 위해 책을 읽어주니까. 남편이 책을 읽어주지 않아서 서운한 건 아니다. 어쩌면 나는 지나치게 행복한 투정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순옥의 책 <남편의 서가>를 읽으니 더욱 그랬다.

 

출판평론가 최성일의 아내 신순옥. 전업주부로 살던 신순옥 작가는 남편의 죽음과 함께 글쓰기를 시작했다. 작가는 출판평론가 남편을 둔 아내가 그와 함께 살면서 겪은 일상과 그를 떠나보낸 후의 상실감을 적은 글이라고 밝혔다. 신순옥 작가는 남편과 사별 후에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남편과 가까워지기 위해 남편이 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남편의 책을 치울 수 없었기에 아이들도 책이 아빠 같다고 말하기에 더 그랬나보다. 사별의 고통과 슬픔을 이야기하는 대목도 울컥했지만 남편을 먼저 보낸 여자이기 보다 아빠를 잃은 아이들의 엄마이기에 더 애써야 했던 작가의 마음을 알려주는 글들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가족의 이름으로천자문을 읽었다는 이야기에는 마음도 아렸다.

 

신순옥 작가의 그림책 이야기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작가는 어릴 적 독서에 대한 경험을 가져보지 못한 탓에 책과 독서는 일종의 로망이었단다. 결혼을 한다면 도서관 같은 집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부모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그는 다행히 책을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한 덕에 꿈을 실현했다고 말한다. 작가 역시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그림책 읽기를 시작했단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글자를 깨쳐도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아이의 정서와 정신에 유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그림책 읽기에 관한 내용만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읽은 책 이야기에 나오는 책도 꼭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남편의 서가>라는 책을 읽다보니 책읽기가 나만의 책읽기는 아니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그랬다. 지금은 뜸해졌지만 남편과 책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으니 말이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모든 게 아이 중심으로 변하니 잊고 있었던 거다. <서재결혼시키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결혼은 장거리 경주이며, 낭독은 이따금씩 탈진하는 경주자들의 힘을 복돋워주기 위해 조제된 낭만적인 게토레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에게 오랜만에 책 좀 읽어달라고 해볼까. 힘들겠지?! 아이를 위한 그림책이라도 함께 읽어야겠다. 장거리 경주를 더 잘 뛰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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