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이사를 가기로 했다. 깨끗해야 집이 잘 나간다는 말에 정말 열심히 쓸고 닦았다. 열심히 닦았는데도 집은 깔끔하지 않다. 아이 짐이 많아서라는 핑계를 대기도 멋쩍다. 워낙에 정리정돈, 청결함, 깔끔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바로 나니까. 아이가 태어나면서 전보다 열심히 청소했지만 별 표가 나지 않는다. 왜 치워도 치워도 내 집은 더러운 걸까. 청소를 해도 더러워지는 건 금방이다. 살림엔 젬병이고 잘하려고 욕심도 부리지 않았다. 이번에 청소를 하면서 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난생처음 정리, 수납의 기술을 다룬 책을 찾아봤다. 내가 고른 책은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곤도마리에의 정리법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을 보면 속옷 개는 법부터 소품 정리법까지 108가지 정리방법이 그림과 함께 상세하게 나와 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에서 저자 곤도마리에는 책 제목대로 물건을 들었을 때 설레지 않으면 과감히 버리라고 말한다. 정리만 잘해도 인생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리고 집이 정리되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고 말한다. 책까지 펼쳐들었지만 정리는 쉽지 않다. 옷장에는 살 빼면 입어야지 하면서 걸어둔 옷들이 많고, 책장에는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아 먼지만 쌓여가는 책들이 빼곡하다.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하고 남겨두어도 끝까지 쓰지 않는 물건들이 집안 곳곳 가득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우리 집엔 방이 세 칸인데 한 칸은 창고처럼 이것저것 물건을 쌓아두는 식으로 이용했다. 그러니 얼마나 엉망진창이었겠는가. 이번엔 정말 열심히 버렸다.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5개 넘게 썼으니 어마어마한 양이다. 버리면서 생각했다. 앞으론 뭘 사지 말아야겠다고 말이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았는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꾸민 집주인을 인터뷰해 소개한 책이나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는 살림 방법을 담은 책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 종류의 많은 책들 가운데 내 맘에 쏙 드는 책을 발견했다. 공간디렉터 최고요 씨가 쓴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라는 책이다.
평소 인테리어에 관심도 없었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인테리어는 돈 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기 집을 짓거나 새 아파트를 산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왔다.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의 저자 최고요는 집은 꾸미는 것이 아니라 가꿔가는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돈이 없어도 내 집이 아니어도 자신의 마음에 들게 집을 가꾸며 산단다. 월셋집을 내 돈을 들여서 꾸민다니 말이 되나 싶었는데 저자의 집에 대한 생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고요 공간디렉터에게 집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담은 공간이며, 여기 살아서 참 좋다는 생각이 드는 공간이라고 한다. 자신이 가장 있고 싶은 공간이니 월세집이라도 꾸미는 게 아니 그의 표현대로 가꿀 수밖에 없었나보다. 내가 가장 있고 싶은 공간이 바로 집이라는 데 공감한다. 아무리 지저분하고 인테리어가 형편없어도 내가 가장 편한 공간은 바로 집이니까. 그런 집을 정성들여 가꾼다면 그 공간에 있는 내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을 가꾸기 보다는 새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다며 헛된 욕망을 키워왔다. 이번에 이사를 결정하면서도 나는 새 가구를 사고 싶어서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가며 장바구니를 채웠다 비우기를 반복했다. 정리하고 최소한의 용품으로 살아보자 마음먹은 건 어느새 까맣게 잊고서 말이다. 그런 내게 최고요의 책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는 집에 대한 생각을 바꿔줬다. 최고요 씨처럼 솜씨가 좋아서 내 손으로 페인팅을 하고 목공작업을 직접 의뢰하고 그럴만한 수준도 안 되고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할 형편은 안 되지만 이제는 나도 내 취향을 찾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으로 정성들여 돌보고 가꾸고 싶다. 살림 못한다, 돈 없다, 바쁘다, 이런 핑계를 대며 대충 사는 게 아니라 정말 잘 살아볼 계획이다. 내 마음엔 벌써 살랑살랑 봄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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