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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호> 겨울 햇살...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9. 26.

입동 지나 어느 날 아침.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았다.

서리 속에서도

오롯이 서 있는,

작은 미역취꽃을,

이른 아침 만나며...

그리 살을게.

그리 살자.

기운 내자,...싶었다.

 

지나간 여름날, 강원도 옥수수 맛보라고 보내주신 외할머니께, 아이가 보낸 다정스러운 문자를 혼자 읽으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할머니, 양도 많고 맛있어요. 옥수수 알갱이 하나하나 만큼 감사합니다...라는 짧고 긴 문장을 읽으며, 내 마음에도 퍼져오는 고마움...

 

김장하고 난 다음 날, 팔은 뻐근하고, 허리는 욱신하고, 어깨는 무거운데 뜨끈한 아랫목에 등 대고 누우니 더 바랄 것 없다.

 

아이와 자전거를 탄다.

초겨울 오후 햇살이 서늘하다.

아이의 손은 찬 바람에

빨갛게 물들었다.

아이가 달린다.

바람을 가르며...

작은 제 온 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그바람을 대신 맞거나 막아주고 싶어도

그것은 내마음일 뿐...

아이는 훨훨 제 바람을 가른다.

 

앓을 때는 모른다.

앓는 이유를.

앓고나면 찾는다.

앓은 이유를.

앓고나면 잊는다.

앓았던 이유를...

앓이를 반복하며

그리, 살아간다.

 

칠순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나에게 몸을 맡기고 앉아 계신다. 닳고 닳아 통증을 주는 고관절을 떼어내고 인공의 그것을 몸에 넣으시고는, 이제 아물기 시작하는 상처에서 오는 통증을 견딜 길 없어 달팽이보다 고단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움직임. 아기걸음마보다 힘들게, 목발 짚고 내딛는 한발 한발. 열흘 만에 감는 머리카락. 물 닿아 씻는 손발에 개운해하시는. 병상에서도 은은하고 아름다운 향을 몸에 뿌리시는 것을 보며, 아름다움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그이의 속내를 보살펴드리고 싶다 지켜드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상처가 아물면 인공의 것과 하나 되는 걸음마를 열심히 반복해서 걸으실 그이의 길에 축복을 뿌린다. 건네드리는 모든 것 하나하나에 고마움을 표현하시는 그마음 빛깔과 닮은 그축복을...

 

늙고 아픈 몸 벗고, 자유로이 바람으로 우리 곁에 계실, 어머니의 평화로운 안식을 기도하는 짧은 문장을 담은 편지를 들고 늦은 밤, 집을 나선다. 아침에 엄마를 잃은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 담담한 표정으로 마주 앉아 산 사람의 일상을 나눈다. 그가 내게 준 말. 할 수 있을 때 사소한 어떤 이야기라도 엄마랑 나눠. 일상 곳곳에서 불쑥 불쑥 엄마를 그리워할, 지금은 담담한 그를, 엷은 미소로 만나다 돌아선다. 엄마의 기억을 안고 우리는 살아가겠지. 엄마는 우리를 안고 자유로이 우리를 지키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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