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결 - " 바루다가 흥을 때는 '한 명'이 되자. "
원제든 어떤 자리든 호모소셜을 위혀서 여성으 성이 수단화 된다면, 바루다가 흥을 깨는 ‘한 명’이 되자. 강력허게 발화자를 비난허자. 정색을 허구 “허지마, 불쾌혀”라구 말허자. 그게 여의치 않다면 적어두 웃지 않구 표정을 구긴 채루 분위기라두 망쳐놓자.
그게 아니라면, “맞다, 당신과 내가 n번방 가해자다, 불법촬영을 가능케혔구, 촬영물이 유통되게끔 n번방을 들락거리며 지갑을 연 게 당신과 내가 맞다.”
재재 - " 썰 풀러 펠프미 가세 "
나에게도 페미니스트로 각성하게 된 계기가 있다. 여동생이나 어머니가 했던 가족 내 차별 이야기나 가까운 여성들이 내게 느낀 불편함을 고백했을 때 난 너무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여성들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 있었지만 난 방관자였고 어느 덧 가해자였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됐다. 그 시간들을 반성하며 페미니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 말과 행동에 스며있던 남성 기재는 방심하면 튀어 나왔다. 그래서 난 요즘 어느 정도 좌절하고 있었다. 그러다 읽게 된 박정훈 작가의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는 조금 위로가 됐다. 작가는 말한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어서 페미니스트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내가 더 달라지고 사회가 더 평등해지기 위해 말해야하고 행동해야 한다. 아! 저기 나와 같은 성찰하며 평등을 꿈꾸는 동료가 있구나!
나보다 더 긴 시간 반성하고 좌절했을 작가의 그 한마디가 용기도 되지만 몹시 부담스럽다. 난 아직도 부족하고 성찰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더 하고 어떤 참여를 해야 한단 말일가. 내 옆의 여성동료들에게 부끄러워 페미니스트라는 말도 못 꺼낼 것 같은데 말이다. 그냥 펠프미나 참여하며 썰이나 풀어보자.
리로드 - "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없으니 도와줘요 펠프미! "
남성 페미니스트라 선언하는 순간 남성들이 주류인 세계관에서 탈주한 소수자였다. 이미 소수자들인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동료가 되었으나 그들에게서 아이러니하게 남자이기에 소수자이다. 주류 남자들에게는 당당하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조심스럽다. 페미니스트 남성은 그렇다. 어느 쪽에서든 불완전한 소수자로서의 위치에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오히려 나는 편안하고 자유롭기까지 하다. 매우 익숙한 안도감마저 들다니. 나는 생존자다. 그 어떤 주류세계에 포획되어 있지 않은. 가장 나다운 나.
그러나 말이다. 내가 여성이었다면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이것이 파열하는 세계이며 남자와 여자가 서 있는 현실지점이다. 바로 이 지점이 남자인 나의 한계이며 뚫고 나가야 하는 생의 과제이다. 나는 나의 한계를 인정하며 내 앞에 놓인 생의 과제를 받아들인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페미니즘이 주는 영감과 외면할 수 없는 이 세계의 폭력의 희생자들 때문이었다.
혼자서 모임을 꾸릴 수는 없었다. 페미니즘을 통해 홀로 깨달은 도사인연 하는 것은 그 또한 페미니즘이 아님을 알기에 사람을 찾아 나섰고 뜻이 통하는 사람들의 용기와 연대가 아니었다면 감히 모임을 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알고자 합니다. 성찰하고자 합니다. 혁신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개과천선 하고자 합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페미니즘 도와줘요! 펠프 미!
솔직한 고백이며 간절한 요청을 담아 펠프 미를 세상에 드러냈다.
이렇게 인권연대 숨 남성 페미니스트 모임이 결성되었다.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라는 제목은 상징적이며 은유적이다. 이 세계가 온전히 남자에 의한 남자를 의한 남자의 세계로 구조화되어 있음을 폭로하며 그로 인한 피해는 여성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받고 있음을 매우 끈기있게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정치 사회적 사건과 저자 자신의 일상에서의 사례들을 촘촘히 다양하게 수록해놓은 이 책은 어찌 보면 페미니즘에 입문한 남자들에게 자신을 마주하는 미러링이 될 수 있겠다. 저자는 담담하게 그러나 매우 꼼꼼하게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고 성찰하며 현재라는 시공간 속에서 부단히 페미니스트로 살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자명하게 남자 중심으로 구조화된 세상 속에서 잠시라도 성찰을 게을리 하거나 사소한 반동에 눈감을 경우 우리라는 남자종은 너무나 익숙한 과거로 투항해 버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 많은 남자들이,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는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알고 전향된 삶을 추구하기를 바라며 책의 일부 구절을 인용한다.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겠고, 페미니즘을 말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별다른 불만도 없다. 하지만 이를 위해 “남자가 뭘 할 수 있냐”고 묻는다. 남자가 페미니즘을 운동을 지지해야 할 이유도, 의미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단순히 ‘여성을 위한 운동’ ‘여성의 몫을 키우기 위한 운동’처럼 여겨서다. 페미니즘이 여성을 비롯한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서 대안적 관점을 제공해주며, 자신의 위치를 조망하며 변화와 해방을 도모하는 근거가 되어주고, 남성 중심 사회의 부조리와 폭력을 해소하는 운동이자 이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292쪽 중에서
오드리 로드는 말했다.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길을 잃은 민주주의와 공격받고 있는 인권에 명징한 영감을 주며 나를 채근하는 구절이다.
구 - "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
남성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 서술되고 만들어진 책은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로 날 집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책은 초반부터 여성의 감성으로 읽힌다. 전혀 남성의 감성이라든가 마초적인 남성성에 맞춰서 읽기란 어려워지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다소 최근에 이루어진 사건들을 중심으로 서술하는데, 어느 정도는 동의하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무언가 모를 죄책감을 준다. 페미니스트로서 박정훈 저자는 여성보다 더 여성적인 고찰과 성찰이 존경스러울 정도다. 여성으로서 느낄 수 있을 만한 고충과 차별을 스스럼없이 표현한다. 한편 내 지인 중 한 여성이 지나갈 때 자연스럽게 성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데 말릴 수가 없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누군가가 여성을 여성적인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닌 외형적인 미의 기준으로 평가하려 들 때, 나는 평가하려는 자들에게 한마디 할 줄 아는 용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라는 책 제목은 웬만한 남성들에게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라는 남자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그들에게 성찰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는게 맞는지도 모른다. 아직 성평등이나 여성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대한민국 사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은 당연하게 남자가 먼저였고 남자가 우선시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던 단편적인 이유는 오롯이 먹고 살기가 힘든 시대여서 여성으로서 차별받는 것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커서였던 격동의 시대를 살아오신 것으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성세대들의 억압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 차별의 역사는 아직도 많은 기성세대들의 여성차별을 낳았고, 여성을 억압한다. 여성상위시대라는 말이 있지만 서평을 쓰는 나 자신은 무엇이 상위시대인지 아무것도 상위 시대랄게 없다고 본다. 여성과 남성의 평등성을 중요시 여기지만 힘 없는 남성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조금 많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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