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쓰는저녁' 은 글쓰기가 필요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서툴더라고 글이라는 흔적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와 존재를 알리고 나누기 위해 매월 공동의 주제로 형식의 제한 없이 글쓰기를 합니다. 7월 모임의 글쓰기 주제는 '여름'입니다.
6월 8일, 새로쓰는저녁 첫 만남
지난 6월 9일 새로쓰는 저녁 첫 모임에서는 '글쓰기' 에 대한 참가자들의 생각을 나눠보았습니다.
서로 비슷한 이야기도, 반대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 나아가 자신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잘 전달하고 싶은 마음을 공감하며 생각나누기를 마쳤습니다.
글 쓰는 기술이나 완성도에 집중하기보단 글 쓰는 행위에 대한 두려움을 낮추고 서로를 독려해줄 수 있는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형식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7월 글쓰기 첫 시작의 주제는 '여름'입니다.
7월 13일, 여름을 주제로 진행한 글쓰기 모임
“퍽” , 글쓴이 하쿠나마타타
“퍽”
통증도 없었고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마 땅을 밟고 서 있었다면 들렸을 소리이다. 손바닥과 팔뚝에 돌멩이가 스치는 감각이 느껴졌을 때 그녀는 본능적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족들과 여름휴가차 휴양림을 예약해 공기 좋은 곳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마음 가는 대로 놀다 보니 근처 강가로 물놀이를 나섰다. 큰 다리 밑 그 강은 꽤나 넓었고 사람들도 많았으나 관광지가 아니였기에 안전요원도 없는 평범하지만 거칠어 보이는 장소였다.
사람들은 감각과 경험으로 위험할만 한 곳은 가지 않았다. 간단히 챙긴 준비물들을 강가에 둘러놓고 신나게 물놀이는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어렸기 때문에 튜브를 가지고 놀았고 어른들은 거의 개헤엄을 치거나 나름 다이빙 장소를 찾아 괘성을 지르면 물에 빠지는 놀이를 했다. 그때였다. 아이들이 함께 놀던 비치볼이 그녀 앞으로 ‘텅’하고 하늘에서 떨어지듯 눈앞에 들어왔다. “앗! 공이네? 내가 가져다 줄께 기다려” 그녀가 서 있던곳은 물 속 평평한 바닥이였기 때문에 아무런 위험도 감지 하지 않은채 공을 향해 온 몸을 뻗었다.
스르륵~~
발바닥을 지탱했던 바닥은 사라지고 몸을 어찌해볼 틈도 없이 그녀는 물 속으로 ‘텀벙’ 소리없이 빠져들었다.
몸이 물 위로 떠올랐다. 잘 보이지도 않았던 저 멀리 강 끝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망원경을 통해 보이듯 선명하게 보였다. 몸이 물 아래로 가라 앉았다. 그녀는 순간 생각했다.
‘난 5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여 수영을 배웠어. 세월이 흘렀지만 난 수영을 할줄 알기 때문에 헤엄을 치며 앞으로 가면 되’
그러나 태어나서 한번도 물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처럼 그녀의 몸은 수영을 잊은 듯 태아 자세로 물속에서 돌기만 했다.
다시 몸이 물 위로 떠올랐다. 주변 많은 사람들의 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리며 그들의 몸 동작이 그녀의 눈에 디테일하게 박혔다.
순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나를 발견 못할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물 아래로 내려 앉았다. 한번 더 떠올랐다. 조그마한 아이가 튜브를 타고 나에게 장난하지 말라며 가까이 왔다.
‘저 튜브를 잡으면 되겠다’ 순간 생각했지만 그 아이마저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 튜브를 포기하고 다시 물 속으로...
마지막이였을 것이다. 물 밖으로 몸이 떠올랐던 것이..
햄스터 놀이통처럼 물 속에서 몸이 뱅글뱅글 돌며 무기력해지는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한가지 생각을 놓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물에 빠져 죽을 리가 없어!’
‘도와주세요 여기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앙칼진 목소리지만 호소력 강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장난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들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아. 그럴리 없어’ 끼리끼리 신나게 물놀이 하는 사람들이 거대한 거인처럼 그녀의 눈에 비쳤고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블랙아웃에 걸려들었다. <후기 있음>
내 등을 발로 걷어차듯 밀어낸 사람은 동생의 남편이였다.
처음에는 장난인줄 알았으나 상황이 급박해짐을 알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왔으나 나는 동생 남편의 머리를 물속으로 밀어넣으며 발버둥을 쳤다고 한다. 그 전에 어떤 남학생이 나를 구해보려고 접근했으나 나의 발버둥을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그 쯔음에 딸 아이는 엄마를 구한다고 접근했고 포기하며 돌아가던 그 남학생이 딸을 밖으로 끌고 갔다고 한다. 동생의 남편은 체구는 작지만 바닷가 사람이다. 내 등을 발로 차듯 물가로 밀어낸건 정말 신의 한수였다.
물가로 어기적 어기적 나온 나는(사실 제부의 머리채에 의존하느라 물은 제부가 마셨고 나는 조금의 기침만 했을 뿐이다) 아무일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평온하게 물놀이 하는 사람들을 보며 오히려 좀 전에 일어났던 일을 스스로 믿지 못하는 이상한 현상을 느꼈다. 남편의 동생은 새까맣고 커다란 튜브를 동네 구멍가게에서 빌려와 나에게 주었고 나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그들의 무리에 뛰어 들었다. 블랙아웃의 짧은 시간동안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영원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난 그 사건 이후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걸까? 점쟁이들은 항상 누구에게나 올 여름 물가를 조심하라고 한다. 조심하면 사고 발생률이야 낮겠지만 어떤이가 물을 얕보고 덤벼들랴
나는 여름이 되면 또다시 물놀이를 한다.
여름. 글쓴이 품씨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무더웠던 여름 내게는 그런 여름은 최근 5~8년간 이었다. 나는 조울병이라는 것을 품고 ‘언덕 위의 하얀집’이라 불리 우는 정신병동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20대의 절반 이상을 보내야 했다. 남들이 직장생활을 영위할 때 걱정만 많은 나는 앞날을 걱정했지만 그곳에서는 편안했다. 아니 편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스스로에게 세뇌를 한 것 같다. 이곳은 가족들이 마련해준 나의 재충전장소라고 말이다.
정신병동은 옛말이긴 하지만 지금도 통용되긴 한다. 지금은 정신건강의학과 재활병동이라고 표현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자해를 할 위험성이 있는 물건은 모조리 반입이 안된다. 칼부터 시작해서 가위 등등 그리고 타해 위험성이 있는 불도 어렵다. 지금은 담배도 못 피는 듯 하다. 재활이라는 명분아래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 할만한 그림치료, 음악치료, 글쓰기 치료, 요리치료 등을 하는데 성인 수준의 기능은 오히려 재활이란 명분아래 역행한다.
예컨대 성인이 정신병동에 2달이상 치료를 받게 되면 자립이 어렵거나 의지하게 되거나, 기능이 역행하여 스스로 무엇을 하게 되기란 어렵게 되어버린다. 심지어 라면 끓이는 어려울 수 있게 되는 퇴행을 반복한다.
그래서 병식(Insight)이 없는 입원 치료 이력이 있는 자들은 입‧퇴원을 반복하기 일쑤다. 나이가 적잖게 있는 자들은 나와서 취직이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그래서 평생 빠져나오지 못하고 병원에서 생활하는 자들도 부지기수다. 필자도 그 생활에 익숙해져 빠져 나오지 못했더라면 그들과 다름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유가 치료라고 본인도 생각한다. 이탈리아는 바살리아법 제정과 함께 정신병동을 폐쇄하고 ‘커뮤니티케어’라는 지역사회기반으로 하는 정신보건 체계를 수립하고 실행하고 있다고 한다. 정신보건의료체계를 바꿔갈 수 없는 이면에는 편견과 인식 그리고 현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를 바꿔갈 수 있는 시도가 없다는 것이다. 정신보건업계종사자와 정신장애 당사자간의 협의, 토론, 협치가 계소 이뤄져야 할 것 이라고 필자는 생각하며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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