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 김훈
구원 일꾼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를 다양한 인물들의 관점에서 차분하게 펼쳐 보여준다. 김훈 작가 특유의 섬세함은 잘 드러나지만 전 저작들인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처럼 격정적이지 않으며 담담하고 단호해 보이는 서술이 인상적이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면서까지 외치고자 했던 동양평화의 메시지를 잘 담아내고 있다. 분명 안중근이 살아야 했던 역사적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 안중근이 취할 수 밖에 없었던 의거의 방식을 오늘날에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중근과 많은 사람들이 꿈꾸었던 “평화”는 오늘날 우리 또한 꿈꾸고 나아가야 할 길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은규 일꾼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소설의 시작이 강렬하고 단호하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다니... ‘정색’이라든가 ‘진지 일색의 삶’은 전봇대하고 어울렸다. 그래서일까 강렬하고 단호한 문장 틈새에서 웃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웃다가 침잠하다 웃다가 침잠하다를 반복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조금만 알아도 이 소설의 맥락을,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이해할 것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빨치산의 딸인 작가는 평생을 유물론자로 살아온 아버지를 가까이서 보았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아버지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어머니에게는 엄격한 유물론자였으며 딸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딸에게는 희극적인 삶의 주인공이었다.
가정경제로 인한 사소한 부부 싸움 중에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뻑하면 하는 소리가 “그러고도 당신이 유물론자야?” 맥락 없는 이 소리는 두 사람의 인연과 관계를 일반적인 부부 사이에서 이데올로기의 동지 그리고 여전히 전장에서 고군분투 중인 전사로 전환시키는 소리임에도 철 지난 가부장적 사고에 절어 있는 비겁한 남자노인네로 비칠 수 있겠다 싶었다. 시대가 변했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사람이 변해서일 게다. 아니다. 시대 때문인지 사람 때문인지 이제는 모르겠다. 소설 속의 아버지라고 변함이 없었을까 싶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다양한 세대가 공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 역사를 알고 이해하는 독자들에게 깊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독자들이라는 게 4,5,60대 층일 것이다. 그중에서 ‘정색’하고 ‘진지 일색’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얼마간의 위로가 되어준다면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그 몫을 다한 것이다. ‘양심’이 있는 책으로서.
(사족)
오래전 오쿠다 히데오 작품 ‘남쪽으로 튀어’를 읽은 우리 집 첫째가 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이거 아빠 엄마 이야기 같아요.” 아이들이 바라보는 아빠로서 ‘나의 해방일지’는 희극일까? 비극일까?
'소식지 > 책 숨 , 슬기로운 탐독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0호> 기적의 도시 메데진, 처음 가는 마을 (0) | 2023.02.27 |
---|---|
<129호> 책 숨, 슬기로운 탐독생활 (0) | 2023.01.30 |
<127호> 책 숨, 슬기로운 탐독생활 (0) | 2022.12.07 |
<126호> 책 숨, 슬기로운 탐독생활 (0) | 2022.10.27 |
<125호> 책 숨, 슬기로운 탐독생활 (1) | 2022.09.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