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의 무덤이 되어버린 도시
아보리스트 이재헌
8년 전 처음 청주에 온 날, 내가 탄 고속버스는 청주대로를 따라 도시로 들어왔다. 넓은 차도 사이에 20미터 넘는 플라타너스들이 나를 내려보며 서 있었다. 플라타너스는 내 얼굴보다 커다란 잎으로 햇빛을 가렸다. 그곳에서 하늘은 녹색 빛이었다. 황홀해 보였던 그 플라타너스들이 사실은 신의 저주를 받은 거인처럼 머리와 팔이 잘린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을 그때는 몰랐다.
지난 1월 28일, 북극 찬 공기가 내려와서 영하 10도쯤 되는 날, 인권연대 숨 ‘도시쏘댕기기’를 위해 청주 중앙공원을 걸었다. 공원에는 은행나무, 느티나무, 플라타너스, 메타세쿼이아 등 키가 큰 나무가 즐비했다. 그러나 많은 나무들에게서 가지 중간이 잘린 가지치기 상처가 많았다. 오래된 나무는 바람에 의해 가지가 부러지기도 하지만 이 상처들은 수목관리라는 핑계로 굵은 가지 중간을 함부로 절단해버린 흔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무뿌리에게 허락된 공간도 너무 비좁고 딱딱했다.
굵은 가지 중간을 자르는 잘못된 가지치기는 아물지 않는 상처를 만든다. 이 상처는 나무를 썩게 하는 곰팡이에게 좋은 출입문이다. 나무도 건강이 좋지 못하면 면역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이때 상처 부위로 들어온 곰팡이는 나무 몸통 구석구석 빠르게 퍼지게 된다. 거대하던 나무는 어느 날 갑자기 속이 썩은 채 쓰러지게 된다. 중앙공원이 청주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의 나무들은 죽을 때까지 팔다리가 잘리고 썩게 되는 고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큰 태풍이 오면 전국에서 수천 그루의 가로수가 쓰러진다. 보행자가 죽거나 다치고 주차된 차량은 박살이 난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나무 생리에 적합하고 체계적인 수목관리 매뉴얼이 없다. 가로수 관리 실행기관인 지자체는 수목관리에 대한 책임 있는 조례가 없다. 민원이 들어오거나 이정표를 가린다고, 혹은 OOO길 조성 공약을 시행하겠다고 나무를 베어버려도 처벌할 조항이 없다. 지자체장의 허가만 받으면 모두 가능하다. 현장 기술자들은 적절한 기술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 적은 사업비 때문에 하루에 25~30그루의 나뭇가지를 잘라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작업 안전은 도외시될 수밖에 없다. 임업 분야는 평균 산업 재해율의 3.8배 이상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도시에 꼭 필요한 나무가 사람을 위협하고 있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나무 생리에 맞게 관리하면 된다. 첫째, 조성 공간에 적합한 나무를 심어야 한다. 좁은 공간에는 작은 나무를, 넓은 공원에는 큰 나무를 심어야 한다. 둘째, 수목관리는 어린나무일 때 낮은 강도로 꾸준히 해야 한다. 한 번에 25% 이상의 가지를 자르면 안 된다. 그러면 나무가 커서 관리할 일이 거의 없게 된다. 지금처럼 나무가 큰 뒤에 한 번에 많이 자르면 나무는 살기 위해 잔가지를 엄청나게 만든다. 수관(나뭇잎이 달린 상부)은 상처 입고 약해진 채로 원래 크기로 복구된다. 결국 예산을 낭비하며 몇 년 주기로 계속 가지를 잘라야 한다. 셋째 나무뿌리가 잘 자랄 수 있는 보호구역을 확보해야 한다(최소 나뭇잎이 달린 수관 크기 정도). 나무는 좁고 딱딱한 땅에서 살 수 없다. 뿌리로 숨을 쉬고 물을 마실 수 있는 토양이 아니면 건강을 잃고 병충해에 약해진다.
기후위기가 다가온 지금, 우리는 나무 없이는 건강하게 살 수 없다. 협소한 도시 공간에서 나무와 사람이 공존하는 길은 분명히 있다. 나무의 생리를 이해하고 나무의 살아가는 방식을 존중하면 된다.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 거리, 바르셀로나 가로수길, 그리고 파리의 가로수길이 그렇다. 청주의 아름다운 플라타너스가 모두 죽어 쓰러지기 전에 바꿔야 한다. 예산 없다는 말 대신 하루빨리 제대로 된 수목관리 매뉴얼을 만들고 가로수를 지킬 수 있는 조례를 제정하길 촉구한다.
“숲에서 품위 있게 살고 있던 나무를 우리 필요에 의해 도시로 불러왔다. 우린 나무의 품위를 지켜줄 책임이 있다.” 알렉스 샤이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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