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보고 싶어서
박현경(화가)
1. 네가 보고 싶어서
‘네가 보고 싶어서’, 너무 보고 싶어서 몸통에 커다란 눈이 돋았다. 그 커다란 눈에서는 뿔처럼 눈물방울들이 뻗어 나오고, 눈물방울마다에 또 눈이 돋아나 너를 찾아 헤맨다. 얼굴을 보면 울어서 부은 듯한 눈에, 기이하면서도 화가 난 것 같은 표정. 무슨 소리인가 어서 빨리 듣고 싶은 소리가 있는지, 귀는 정수리에 솟아 있다. 어딘가 깊은 곳을 향해 급히 달려가고 있는 모양.
이 그림을 그리기 얼마 전 10.29 참사가 있었다. 국가가 제 역할을 안 하는 사이에 죽어간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이 참사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다. 그 눈물과 분노를 보며 나도 함께 울었다.
그렇게 함께 우는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그리다 보니 세월호 참사로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분들도 떠올랐다. 또 제주 4.3 항쟁 희생자 유가족분들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자 유가족분들도……. 사회적 참사 또는 국가 폭력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고 애달피 우시는 분들에 대한 마음이 녹아들어 이 그림이 됐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면서 눈을 부릅뜬 채 눈물을 흘려야 하는 분들이 이 땅에는 참 많구나.
2. 눈물이 눈[目]이 되어
이후 ‘네가 보고 싶어서’ 연작을 계속해서 그리고 있다. 이 연작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눈물방울 속에 돋아난 눈’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눈물을 쏟고 있고 그 눈물방울들에 저마다 또 눈이 돋아나 있다.
처음에는 나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또는 내면의 어떤 목소리를 받아쓰기하듯 그렇게 그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됐다.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정말로 눈물방울마다에서 눈이 돋아난다는 것을.
우리가 어떤 비극 앞에서 함께 울 때, 그 눈물은 또 하나의 눈, 즉 증인이 된다. 세월호 참사나 10.29 참사를 국가 권력은 마치 별일 아닌 양 덮어 버리고 싶어 했지만 끝끝내 잊지 않고 함께 분노하며 울어 주는 시민들이 있다. 이렇게 함께 흘리는 눈물들은 불의에 대한 저항과 분노를 품고 있다. 이 눈물들은 유약하게 스러지지 않고 저마다 또 하나의 증인이 되어 유가족들과 연대한다.
3.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내 고독과 슬픔이 너무 깊어 안으로만 안으로만 파고들던 시기도 있었다. 그때는 ‘나’ 밖의 문제들보다는 ‘나’ 안의 문제들이 훨씬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또한 내가 감히 사회적 참사나 국가 폭력에 대해, 이 사회 곳곳의 고통 받고 억울한 이들에 대해 그림으로든 글로든 표현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됐다. 내가 ‘나’ 밖의 문제들이라고 생각한 사회적 슬픔 앞에서 눈감을 때, ‘나’ 안의 문제들도 방치되고 있다는 것을. ‘나’의 안과 밖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나’ 밖의 문제들, 즉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그로 인한 아픔에 대해 그림으로든 글로든 표현할 자격이 내게 있다는 것을. 그리고 여기서 ‘자격’은 ‘책임’이라는 말로 바꿔 적힐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나’ 안의 고독과 슬픔에 천착하던 시기는 어쩌면 ‘나’ 밖의 이웃들과 함께 울 수 있는 ‘슬픔의 근육’을 키우던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나’의 안과 밖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그 ‘슬픔의 근육’이 어느 정도 붙었을 때 비로소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네가 보고 싶어서’ 연작 속 존재들처럼 앞으로도 두 눈 부릅뜨고 눈물 흘리며 살고 싶다. 우시는 분들과 함께 울고 싶다. 그 ‘함께 욺’을 그림으로 담아내고 싶다.
그림_박현경, 「네가 보고 싶어서 2」
* 이 글은 그림 ‘네가 보고 싶어서 2’를 감상하며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아래의 QR코드를 스캔하시면 그림 ‘네가 보고 싶어서 2’를 컬러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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