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 정희진
“의심하지 않는 생각없음의 지옥도” 이은규
우리모두와 다른 단 하나의 생명체라도 그 존재를 부정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되잖아요. 집단이 갖는 권위와 권력으로 차이를 차별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아니 그렇게 학습 당해 온 생이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회는 더 다정하고 살만하지 않았겠어요? 혐오와 불안, 공포와 학대가 만연한 현실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 우리들의 생각없음이 만들어 낸 지옥도가 아닐까요?
책을 덮을 때 즈음 들었던 생각이다.
“이 책이 쉽게 읽히지 않는, 논쟁의 불씨가 되는 텍스트이기를 바란다. 여성학, 여성 운동은 모든 담론과 마찬가지로 언어의 경합을 통한 생산적인 갈등 없이는 진전도 없다. 한국의 여성주의가 나아감 없이 여성의 생존의 목소리가 왜곡되어 미소지니의 타깃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나는 여성의 공부, 다른 언어, 남성 사회가 못 알아듣는 언어가 최고의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남성 사회의 질문에 답하지 말고, 그들이 못 알아듣는 새로운 언어로 말하자._머리말에서”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규정한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다. 자명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구나 쉽게 알아듣기는 어렵다. 정희진의 도구는 가부장제 일방적 습속을 거슬러 전복하는 정희진만의 도구이다. 여성주의라고 해서 예외일리가 없다. “여성주의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모두 자원이 되지 않는 사회를 추구하고 지향하는 사상이다.” 그래서일까 자꾸 생각하게 하고 스스로 질문하게 하고 그리하여 공부하게 한다. 정희진의 공부는 노동이다.
“공부는 질문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혹은 공부하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선생님에게 물어 도움을 요청하는 노동이다. 이 외의 모든 질문은 권력 행위다.”
“내 세계관이 계속 흔들리는” 이구원
이번 책은 상당히 힘들게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다양한 감정들이 솟구쳤고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통쾌함, 답답함, 뜨끔한 죄책감, 의구심이 공존하며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내용이 어렵거나 난해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았다. 이 책은 나를 왜 이리 불편하게 만드는가?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제로 인해 기존의 ‘이성애 중심의 욕구와 성 관계의 폭력성에 대한 문제기에 한 편으로는 동의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비판들이 내 욕구와 맺어보지도 못한 관계를 부정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성애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많은 장애인들이 무성애자처럼 살아갈 것을 강요 받는 현실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퀴어에 대한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성애(특히 동물성애 등)를 소개하는 과정도 솔직히 납득이 잘 안 갔다. 정확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서의 어설픈 변호 같았다.
위 불만들은 일부 내용에 대한 내 개인적 의견일 뿐이며 내가 불편했던 근본적 이유는 그동안 상식으로 여겼던 내 세계관이 계속해 흔들리는 느낌이 싫어서였다. 지금도 소수자성을 지닌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데 사회와 내 자신이 규정한 범주를 벗어난 세계로 자꾸 들어가는 것이 두렵고 지친다. 그럼에도 사회가 변하려면 나부터 변해야겠지만...솔직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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