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원
소설, 수필, 강연 그 어딘가 사이에 있는 책이다. 내용은 길지 않지만 막 빠져들며 읽지는 못했다. 솔직히 저자처럼 일상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며 살다가는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여성의 자유로운 글쓰기의 출발점을 적당한 수입과 자기만의 방(공간)이라 보았던 버지니아 울프의 주장은 장애인을 포함한 소수자성을 지닌 존재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최소 조건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만연했던 차별 중 어떤 것은 철폐되었지만 여전히 아직도 우리는 차별과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남성이라는 권력적 계층의 속성과 장애인이자 저소득층으로서의 소수자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그저 고민이 들 뿐이다.
이재헌
1928년 런던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강연장에 가는 상상을 해본다. 강연자는 버지니아 울프다. 그녀는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시작한다. 그녀가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격었던 크고 작은 경험들을 짧은 소설처럼 들려준다. 청중인 나는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그녀의 이야기 속에 있는 가부장적인 사회에 대한 통찰과 유머에 흡입되어 간다. 여성 혼자 들어갈 수 없는 도서관, 여성에 대한 수 많은 남성들의 책 속 혐오에 가까운 묘사들. 그리고 경제적 빈곤함에 차별을 감내해야 했던 여성들. 덤덤하게 들려주는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에서 청중들은 과거 자신들이 격었던 분노와 좌절들을 떠올리며 공감하게 된다.
그녀는 청중들에게 너무나 성차별적이고 폐쇄적인 영국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기위해서 ‘자기만의 방’과 최소한의 경제력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100 년 뒤에는 여성이 더 이상 보호받는 존재가 아닐지 모른다고 희망하듯 말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 수 많은 여성들과 나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자기만의 공간과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은 요원해 보인다. 당대 사회의 차별적 모습을 예리하게 통찰했던 버지니아 울프도 100년이나 지나도 여전히 불평등한 모습을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책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100년 뒤에도 사회가 여전히 차별적이고 불평등하면 어쩌지?’ ‘우린 100년 전과 비교해서 어떤 것이 바꼈지?’ 이 책은 현재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여성과 약자들에게 작은 공감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시대 울프들이 좌절한 울프의 모습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저항하고 분노했던 울프의 모습을 더 기억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배상철
영국 캠브릿지 대학 강연장에서 울프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일관되게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신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전하는 것뿐이라 한다. 픽션의 주인공 ‘메리 시턴’의 이야기가 아니라 논픽션의 주인공 세상의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1928년 혼란의 영국사회에서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제한당하고 억눌리는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늘 가난했고, 부자로 살고 싶어도 살 수 없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조차 사치에 가까웠다. 1928년 폐쇄된 영국사회는 꿈틀대는 여성에게 ‘우리가 원하는 건 여성과 픽션에 대한 강연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 선을 넘지 말라고’경고한다.
울프는 말한다. “여전히 돈과 자신만의 방이 없으면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여성 앞에 놓여있는 유일한 답은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영향력을 가져야 할지를 제시해 주려고 수 천 수 만개의 펜이 기다리고 있으니 과감히 이에 응답하는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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