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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호> 눈물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1.

별이 예뻐서 밤하늘이 좋았어.

새까만 하늘에 수놓은 듯한 별들.

별들을 선으로 이어 모양 만든 별자리.

 

옛날 사람들은 상상력이 뛰어났지.

그들은 하늘이 좋았고 아름다웠어.

밤하늘 별자리마다 이야기를 달았단다.

-하늘, H-

 

목요일마다 아기를 만난다. 아기에게 말 걸고, 몸을 쓰다듬고, 딸랑이를 흔들고, 기저귀를 갈고, 물을 먹이고, 이유식을 먹이는 그런 모든 과정에 그 아기의 어머니가 늘, 동행하신다. 아니, 그들의 과정에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잠시, 동행한다. 이제 세상에 나온 지, 구 개월 된 아기는 소리 없이 웃어, 애가 닳는다. 일곱 살 된 그 아이의 언니. 다른 아이들보다 발달이 늦어 치료실에 다니고, 통합반에서 유치원 생활을 하고 있지만, 도움이 필요하다. 도움 받아 아이를 키우고 계신 그 아이들의 어머니. 일주일에 한두 가지씩 육아 숙제를 내 드리면 꼬박꼬박 해오신다. 보리차 먹이기 숙제를 내드리고 일주일 후 만남. 젖병 속의 보리차 빛깔이 수상하다. 뚜껑 열어 냄새 맡아보니 쉬었다. 여쭈어 보니 어제 끓였고, 오늘은 먹지 않았단다. , 다행이다. 물은 만약에 끓이면 하루 동안만 먹고, 남은 것은 차라리 버리기로 약속하고, 말 많이 걸기, 배밀이 연습 많이 하기 숙제 내고 돌아서자 또르륵, 떨어지는 눈물... 그 아기가 잉태되었다는 소식 들었을 때 마음껏 축하해 주지 못해서... 힘겹게 양육의 길을 걷고 계신 어머니도, 그 과정에 내내 옆에서 스스로 설 때까지 있어야만 하는 아기도, 다 힘든 무게여서... 한껏 울다 다시, 마음 다 잡는다. 아기가 어떤 발달을 하든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겠지, 꼬박꼬박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나기로, 다시...

구십 이 세 되신, 아이들 고향 할아버지께서 칠년 넘게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다. 그분 보내드리는 마지막 미사. 성당 뒷줄에 앉아 눈에 익은 유가족의 뒷모습을 본다. 성체를 모셔다 드릴 때마다 늘, 웃음으로 화답하셨다던, 그래서 요셉 할아버지 만나고 오는 날엔 마음이 매번 가벼우셨다는 신부님. 유가족을 대신 하여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다는 말씀. “아빠, 고맙습니다.” 그렇게 웃음과 사랑 남기고 떠나시는 그분의 관. 그 관을 따르는 사람들. 배웅하고는 나의 아리따운 학생들이 계신 한글교실로 향한다. 이제 갈 곳은 한 곳뿐이라고 늘, 말씀하시는 팔십 넘은 나의 학생들. 빨개진 눈시울 보시며, 잘 보내드리고 왔냐고 하신다. 많이 슬프냐고도 하신다. 그래서 할아버지 머리맡에 놓여있던 자그마한 라디오가 생각난다고 말씀드렸다. 웃으면 눈동자 없이 하회탈처럼 환한 미소가 되는 할아버지의 새우 눈을 말씀드리다 다시, 눈물... 빨리 커피 타 달라고 하시는 말씀 소리에 눈물 쏙 들어갔다. 선생님 우는 데 왠 커피냐며, 사는 게 다 그런 거라며, 우리는 살았으니 커피 마셔야된다며, 웅성웅성... 그래도 지금은, 땅 파다가 땀나는 때이니까 어머님들은 지금은 아니라며, 땅 얼면 땅 얼어서 안 된다며, 가을엔 볕이 좋아 안 된다며, 봄엔 씨앗 뿌려야 되니까 안 된다며, 나도 웅성웅성...

 

그 밤, 하루 내내 그 기운으로 지내다가, 내 존재를 들여다보는 시간, 사는 게 달콤한 슬픔으로 아로 새겨지는, 그런 밤. 나에게 물었다. 너는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를 보내드릴 때, “아버지, 고맙습니다.” 말씀드릴 수 있는가?... 대답은, 아직, 기꺼이 감사를 일으키기가 어렵다, 였다. 그 대답이 서러워 다시 눈물짓던 그 밤. 아버지랑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나구나... 힘들게 살아오셨을 아버지의 마음도 좀 어루만져드리고, 내 마음도 좀, 보여드리고... 맑은 날 그리워하라고 슬픈 날도 있는 거라며 견디라고 말씀해 주셨던 그 기억도 말씀 드리고 싶다. 슬픔이 깊어 마음이 많이 저렸던 날에는, 아버지의 목소리로 위로받고 싶었던 날도 있었다고, 아버지도 제 위로에 기대고 싶었던 날이 있으셨을 것 같다고, 이제 불안, 비난, 생각 그런 거는 좀 놓아주고, 지금에 머무르시자고, 우리는 놓아주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홀가분함을 드리고도 싶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 말씀을 전해드리지 못하더라도, 나에게는 그 문장을 주고 싶다. 나에게 기대어...

 

습기 많은 터널 안.

라디오 볼륨 커다랗게 하고,

창문 열고,

습기를 느낀다.

, 살아있구나...

 

남편과 방을 정리하다

그 말을 듣는다.

가볍게 살자.

허나, 버리지 못하고,

옷걸이에 마음을 건다.

이야기를 걸어놓는다.

버려도 사라지지 않을 이야기를,

다시, 건다.

옷걸이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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