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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by 인권연대 숨 2024. 5. 19.
이구원

소설, 수필, 강연 그 어딘가 사이에 있는 책이다. 내용은 길지 않지만 막 빠져들며 읽지는 못했다. 솔직히 저자처럼 일상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며 살다가는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여성의 자유로운 글쓰기의 출발점을 적당한 수입과 자기만의 방(공간)이라 보았던 버지니아 울프의 주장은 장애인을 포함한 소수자성을 지닌 존재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최소 조건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만연했던 차별 중 어떤 것은 철폐되었지만 여전히 아직도 우리는 차별과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남성이라는 권력적 계층의 속성과 장애인이자 저소득층으로서의 소수자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그저 고민이 들 뿐이다.

 

 

이재헌

1928년 런던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강연장에 가는 상상을 해본다. 강연자는 버지니아 울프다. 그녀는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시작한다. 그녀가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격었던 크고 작은 경험들을 짧은 소설처럼 들려준다. 청중인 나는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그녀의 이야기 속에 있는 가부장적인 사회에 대한 통찰과 유머에 흡입되어 간다. 여성 혼자 들어갈 수 없는 도서관, 여성에 대한 수 많은 남성들의 책 속 혐오에 가까운 묘사들. 그리고 경제적 빈곤함에 차별을 감내해야 했던 여성들. 덤덤하게 들려주는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에서 청중들은 과거 자신들이 격었던 분노와 좌절들을 떠올리며 공감하게 된다.

 

그녀는 청중들에게 너무나 성차별적이고 폐쇄적인 영국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기위해서 자기만의 방과 최소한의 경제력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100 년 뒤에는 여성이 더 이상 보호받는 존재가 아닐지 모른다고 희망하듯 말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 수 많은 여성들과 나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자기만의 공간과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은 요원해 보인다. 당대 사회의 차별적 모습을 예리하게 통찰했던 버지니아 울프도 100년이나 지나도 여전히 불평등한 모습을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책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100년 뒤에도 사회가 여전히 차별적이고 불평등하면 어쩌지?’ ‘우린 100년 전과 비교해서 어떤 것이 바꼈지?’ 이 책은 현재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여성과 약자들에게 작은 공감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시대 울프들이 좌절한 울프의 모습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저항하고 분노했던 울프의 모습을 더 기억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배상철

여성과 픽션

영국 캠브릿지 대학 강연장에서 울프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일관되게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신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전하는 것뿐이라 한다.

픽션의 주인공 메리 시턴의 이야기가 아니라 논픽션의 주인공 세상의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여성과 가난

1928년 혼란의 영국사회에서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제한당하고 억눌리는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늘 가난했고, 부자로 살고 싶어도 살 수 없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조차 사치에 가까웠다. 1928년 폐쇄된 영국사회는 꿈틀대는 여성에게 묻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여성과 픽션에 대한 강연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제 제가 답할 차례인가요?‘ 울프는 말한다.

여전히 돈과 자신만의 방이 없으면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여성 앞에 놓여있는 유일한 답은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하고 어떤 영향력을 가져야 할지를 제시해 주려고 수천 수만개의 펜이 기다리고 있으니 과감히 이에 응답하는 길뿐이다

 

책을 덮으며 좀 엉뚱한 질문을 해본다.

○○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신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

아직 세상에는 핍박받고 차별받는 ○○이들이 너무 많다.

 

 

나는 꿈꾼다.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의 고정수입이 주는 리얼리티를.
이은규

 

1928년에 출간된 책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백 년 후, 즉 지금으로부터 4년 후인 2028년 미래에 대해 언급했다. (미래를 막연하게나마 측량하는 데 있어 백 년 후라는 표현은 꽤 적당한 수치가 아닐까 싶다)

그는 백 년 후에 세상은 각자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의 고정수입이 생겨 가장 커다란 해방, 즉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는 자유를 누리며 훤히 트인 하늘을 공유하고 있기를 축원했다. 그리하여 셰익스피어의 누이가 몸을 걸치고 다시 태어나 리얼리티한 자신의 시를 쓸 수 있는 세계를 기대했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는 그의 기대와는 별개로 세계가, 사람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은 병 때문에 자살을 택했다고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스스로 자기만의 방을 봉쇄해 버렸다.

그럼에도 버지니아 울프의 기대는 변함이 없어 백 년에 백 년을 보태 더 먼 미래에 셰익스피어의 누이와 함께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할 해방된 사람들을 방 문 너머에서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 꿈꾼다.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의 고정수입이 주는 리얼리티를.

 

(아래는 자기만의 방에 수록된 글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옮겨 놓았다)

 

벌 떼처럼 일어난 의문들

왜 남자들은 포도주를 마시고 여자들은 물을 마시는가?

무슨 이유로 남성은 그렇게 부유하고 여성은 그다지도 가난한가?

가난은 픽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데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가?

버지니아 울프에게 필요한 것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었다.(42, 민음사)

 

여성은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 크기의 두 배로 확대 반사하는 유쾌한 마력을 지닌 거울 노릇을 해 왔습니다.(...) 거울의 환영은 활력을 충전시키고 신경 조직을 자극하기 때문에 더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빼앗아 보십시오. 그러면 남성은 코카인을 빼앗긴 마약 중독자처럼 죽을 것입니다.(58, 민음사)

 

돈을 벌기 위해 무엇보다도, 원하지 않는 일을 늘 하고 있다는 사실,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에 노예처럼 아부하고 아양을 떨며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나와 다름없는 단 하나의 재능이 소멸하고 있다는 생각, 이 모든 것들이 나무의 생명을 고갈시키며 봄날의 개화를 잠식하는 녹과 같았다. (,,,) 숙모가 죽고 상속분으로 매년 500파운드라는 고정수입이 생겼다.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났다.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누구에게 아부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렇게 되자 인류의 다른 절반에 대해 아주 미세하나마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두려움과 쓰라림은 점차 완화되어 연민과 관용으로 바뀌었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가장 커다란 해방,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는 자유가 생겨났다. 숙모님의 유산은 하늘의 베일을 벗겨 주었고, 밀턴이 우리에게 영원히 숭배하라고 천거한 신사의 크고 위압적인 모습 대신 훤히 트인 하늘을 보여 주었다.(59, 62, 민음사)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다. 그리고 여성은 그저 200년 동안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다.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다. 그러니 여성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일말의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것이다.(163, 민음사)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고 쓰기를 권하고 싶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수 있기에 여러분 스스로 충분한 돈을 소유하게 되기 바란다.(164, 민음사)

 

우리가 앞으로 백 년 정도 살게 되고 각자가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가 공동의 거실에서 조금 탈출하여 인간을 서로에 대한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리얼리티와 관련하여 본다면, 하늘이건 나무이건 그 밖의 무엇이건 간에 사물을 그 자체로 보게 된다면 아무도 시야를 가로막아서는 안 되므로 밀턴의 악귀를 넘어서서 볼 수 있다면, 매달릴 팔이 없으므로 홀로 나아가야 하고 남자와 여자의 세계만이 아니라 리얼리티의 세계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그때에 그 기회가 도래하고 셰익스피어의 누이였던 그 죽은 시인이 종종 스스로 내던졌던 육체를 걸치게 될 것이다. 그녀의 오빠가 그러했듯이, 그녀는 선구자들이었던 무명 시인들의 삶에서 자기 생명을 이끌어 내며 태어날 것이다.(171, 민음사)

 

 

나순결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著, 반니 刊, 2021

크리스티나 로제티(Christina Georgina Rossetti, 1830~1894.12.29.)
​레베카 웨스트(Rebecca West, 1892–1983.3.15.)
제르맹 타유페르(Germaine Tailleferre, 1892~1983.11.7.)
앤 핀치(Lady Winchilsea(혼 후), Anne Finch(혼 전), 1661–1720.8.5.)
애프라 벤(Aphra Behn, 1640~1689.4.16.)
도로시 오스본(Dorothy Osborne, 1627-1695.2)

이들이 선구자다. 

119쪽에 “선구자가 없다면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와 조지 앨리엇은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 울프는 적었다. 이들은 공동 거실에서 썼고, 넘 가난혀서 원고를 한 번에 몇 묶음밖에 사지 몬혔다. 그런대두 이후루두 오랬동안 계속 재출간되구 작금두 지구촌 여기저기서 읽히구 있는 글을 생산혔다. 
​맞다, 울프와 20세기 초반 활동혔던 문필가 또헌 바루 앞세대-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와 조지 앨리엇- 작품이 잇었기에, 그 작품을 읽엇기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던거구.  
500파운드구 열쇠루 잠글 수 잇는 자기만의 방이구 넘나 유명헌 아포리즘이라 내가 더 헐말은 없구, 단한나, 울프가 여성글쓰기에서 강조헌 것 단한나만 옮겨적는 걸루 소회를 끝낸다. 191쪽 아래에 있는 문장.

“여러분이 글을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 그것만이 중요합니다. 그 책이 오랜 세월 가치가 있을지, 아니면 단 몇 시간 동안만 중요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은빛 트로피를 들고 있는 교장 선생님이나 소매 속에 평가의 잣대를 감추고 잇는 교수를 존중해 여러분의 비전을 머리카락 한 올만큼이라도, 그 빛깔의 아주 미묘한 색조 하나라도 희생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끔직한 변절입니다. 이에 비하면 인간에게 최악의 재앙이라 하는 재물이나 정조의 희생은 그저 벼룩에 물리는 정도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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