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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

4월은 갈아엎는 달

by 인권연대 숨 2025. 4. 25.
4월은 갈아엎는 달

 

신동엽

 

내 고향은

강 언덕에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

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풀줄기 우그려 넣고 있을

, 죄 없이 눈만 큰 어린 것들.

 

미치고 싶었다.

사월(四月)이 오면

산천(山川)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사월(四月)이 오면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우리네 조국(祖國)에도

어느 머언 심저(心底) , 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미치고 싶었다.

사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東學)의 함성,

광화문(光化門)서 목 터진 사월의 승리(勝利).

 

강산(江山)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享樂)의 불야성(不夜城)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한강연안(漢江沿岸)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일어서는 달.

 

 

          - 19664월 동아일보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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