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한 단상, 학교 청소의 기억에서 휘게까지
이혜숙
청소하는 사람들에게 2월은 학교 청소의 달이다. 개학을 앞둔 학교마다 전문업체에 청소를 맡기기 때문이다. 토요일 새벽, 인천의 한 중학교에 학교 청소를 다녀왔다. 창틀의 묵은 먼지를 닦아내다가 문득 어린 시절 학교가 떠올랐다.
그때는 청소가 일상이었다. 청소 당번이 되면 남들보다 일찍 등교해 아직 조용한 교무실을 닦았고, 장학사가 온다는 날이면 전교생 대청소를 했다.
책상을 들어 운동장으로 내고 복도에 물을 뿌리고 신문지로 창문을 닦았다. 2층 창문에 매달려 대롱대롱 흔들리던 친구들. 지금 생각하면 위험했고 지금 기준이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풍경이다.
친구와 다투거나 숙제를 해오지 않거나 말썽을 부린 아이들에게는 화장실 청소가 맡겨졌다. 푸세식 화장실은 모두가 피하고 싶어 하던 그 시절의 ‘가장 큰 벌’이었다. 청소는 벌이었다. 그 시절의 청소는 함께 웃고 떠들던 기억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벌’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아 있다.
나는 청소를 싫어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민학교 1, 2학년 생활기록부에는
“책상 정리를 잘함”이라고 적혀 있다. 정리를 싫어하지 않던 아이가 언제부터 청소를 싫어하게 된 걸까. 아마도 청소는 좋지 않은 일이라는 암묵적인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티도 나지 않고 잘못한 사람이 하는 일로 자리 잡아 있었으니까. 집에서도 그랬다. 청소 같은 집안일은 하찮은 일, 작은 일, 여자의 일이었고 중요한 일은 바깥일, 큰 일, 남자의 일이라고 여겨졌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던 나, 그러나 하찮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았던 나, 하찮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내가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의 놀라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생각이 바뀌자 나는 다시, 스스로 청소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예전부터‘휘게’라는 말을 좋아하고 ‘코지’라는 말도 좋아한다. 휘게는 덴마크 사람들이 말하는 편안하고 따뜻한 삶의 방식이다. 비싼 것이 아니라 정돈된 공간, 따뜻한 조명, 깨끗한 테이블 위의 머그컵 하나 같은 소소한 안정감에서 오는 행복이다.
코지는 몸과 마음이 긴장을 풀고 안심할 수 있는 상태다.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공간에서는 사람도 모르게 마음이 예민해지지만 깨끗하고 정갈한 공간에서는 호흡이 느려지고 생각도 부드러워진다.
청소는 바로 그 휘게와 코지를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청소는 가장 저렴한 인테리어이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물리적인 행동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청소 교육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 벌로서의 청소가 아니라 공간을 돌보는 방법으로서의 청소, 함께 살아가는 기술로서의 청소, 자기 삶을 정리하는 힘으로서의 청소. 청소는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일이 아니라 누구나 배워야 할 생활의 기본이라는 것을. 청소는 벌이 아니라 기술이다.
어릴 적 신문지를 들고 창문에 매달려 있던 그 위험한 풍경은 사라져야 하지만 공간을 스스로 돌보는 경험까지 사라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늘 깨끗해진 학교 복도를 보며 그 시절의 기억과 지금의 생각이 조용히 겹쳐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걸레를 든다. 공간이 바뀌면 사람의 하루가 달라진다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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