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이 스물다섯살 연하의 시인과 결혼을 했는데 책으로 결혼식을 대신한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로맨스 아니 결혼은 어떤 모습일까, 게다가 책으로 결혼식을 하다니 놀랐다. 이렇게 멋진 생각을 하다니 시인들은 정말 다르구나 싶었다. 궁금했다. 그렇게 해서 훔쳐보게 된 그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이다.
“우리는 새벽의 나무 둘처럼 행복합니다”라며 행복을 노래한 이 책은 그들의 결혼 선언으로 장석주, 박연준 두 시인이 한 달 간 시드니에서 머문 이야기를 묶어냈다. 이 책은 마치 두 사람이 하나의 결혼으로 묶이듯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의 책으로 묶였다. 빨간 글씨로 인쇄된 앞부분은 아내 박연준 시인의 이야기이고 파란색 글씨의 뒷부분은 남편 장석주의 이야기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보낸 시간들을 그들은 각각 어떻게 풀어냈을까. 그들은 서로의 글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 책을 만들면서 봤다니 그때의 느낌은 또 어땠을까, 괜히 궁금해진다. 나는 마치 다른 부부의 일상을 훔쳐보는 듯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시드니에서 한달간 살기로 한 그들은 시드니 생활에 이런 기대를 한다. 여자는 “시드니란 처음 만나는 처음이 될 것이라며 그곳의 봄이나 남의 살림살이들까지 무수한 처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누군가 내 삶을 세탁해 입어보라고 처음을 선물한 것 같다고 오래된 처음처럼 꼭 맞았으면 좋겠다”고 설렘을 말한다. 남자 역시 “늘 어디론가 떠나는 꿈을 꾸었다며 익숙한 곳이 아닌 낯선 도시, 이국의 도시들을 꿈꾸며 비밀 몇 개를 기르며 겸허하게 살아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시드니는 아름답고 고요한 지옥, 그 낯선 곳에서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우리를 명예롭게 할 것이라고 명예를 갈망한다면 당장 여행가방을 꾸리라고 부추긴다.
‘처음 마주한 삶, 늘 꿈꿔왔던 삶’을 그들은 어떻게 보냈을까. 일상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밥을 해먹고,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베란다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시간을 보낸다. 한국과는 달리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들, 참 많은 것을 했는데도 마치 하루가 48시간으로 늘어난 것 같은 그렇게 조용하고 평화롭고 여유로운 시간들을 보낸다. 아무리 뜨거운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일지라도 일상을 지내다보면 다투기도 한다. 그래도 행복했다고 박연준은 말한다. 남편과 다투고 나서도 “그의 나쁜 점은 열 개 이상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한다고, 화가 나 있는데도 보고 싶어 함께 있을 수밖에 없다”고 사랑을 고백한다. 그 남자 장석주도 서문에서 사랑을 말한다. “1인분의 고독을, 그 자유와 고요를 잃을까봐 두려웠던 것이지요. 이제 망설임을 떨치고 용기를 냅니다. 사랑이라고 해도 좋아요. …사랑이란 2인분의 고독을 뜨겁게, 늠름하게 받는거예요” 라고.
사실 나는 장석주 작가에게 관심이 많아 이 책을 읽었는데 박연준 시인의 이야기가 더 좋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날 것 그대로인 내밀한 속내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해 단숨에 읽었다. 장석주는 설명하기 좋아하는 남자 어른처럼, 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답게 걷기라는 주제에 충실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부부의 짧았던 캐나다 생활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나도 어려서부터 여행자가 아니라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남편의 해외연수에 따라나설 수 있어서 무척이나 좋아했다. 참 설레였다. 그러나 그 설렘은 무료함과 외로움, 답답함이라는 대가를 치러야했다. 영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차가 없는 우리 부부는 참 많이도 걸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웰랜드라는 곳은 워낙에 숲이었다고 했다. 키가 큰 오래된 나무들이 멋지게 들어선 동네 길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걸었다. 주말에는 보다 멀리까지 걸어가서 커피와 빵을 사먹고 돌아오기도 했다. 우리도 그들처럼 심심해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나는 남편에게 얼마나 의지했는지 모른다. 영어를 못해서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서로를 깊게 바라보며 일상에서 벗어난 꿈 이야기들로 가득 채웠다.
나는 힘든 육아 때문에 남편에게 화를 많이 냈다. 나는 심지어 그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말하며 상처를 줬다. 마음은 안 그랬는데 나도 모르게 거칠게 말하고 돌아서서 후회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특별했던 캐나다에서의 시간들도 떠오르고 남편의 사랑도 되새긴다.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한다. 부부는 그 길을 함께 걸어간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 몰라도 내 옆에서 지금처럼 내 손을 잡아줄 거라 생각하니 든든하다. 시인들처럼 멋진 고백으로 채워진 길은 아니더라도 우리 부부가 함께 걸어온 시간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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