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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수희씨와 책읽기(종료)

<제97호> 임계장 이야기, 경비원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 이수희(충북민주언론연합 사무국장)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7. 28.

 

 

엉엉 울었습니임계장 이야기를 통해 아파트 경비원의 외침을 세상에 전했지만 들어주는 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제 책은 쓸모없어졌습니다경비원 최씨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입니다. 죽으려고 노동한 것이 아닙니다. 이 죽음에 대해 무심하지 말아주십시오” <임계장 이야기>를 만나기 전에 페이스북에서 조정진 작가의 글을 먼저 봤다. 얼마 전 주민에게 맞아 부상을 당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 최모씨의 죽음을 접한 조정진 작가는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짧은 글을 읽으며 눈물이 났다. 주문해 놓고 기다리던 책이 마침내 도착했다. 궁금했던 <임계장 이야기>를 무거운 마음으로 펴들었다. 임계장; 임시 계약직 노인장, 고다자 ;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임계장’, ‘고다자나는 이 말들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아파트 경비원, 빌딩 관리원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도 처음으로 제대로 알았다. <임계장 이야기>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빌딩 주차원이자 관리원으로 일한 조정진 작가의 노동일지이다.

 

<임계장 이야기>의 작가 조정진은 공기업을 퇴직한 후에 생계를 위해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사무직은 얻을 수도 없었고, 몸을 써서 해야 하는 일, 최저임금을 주는 단기 비정규직 일자리만이 그를 기다렸다, 처음으로 시작한 일은 버스 회사 배차 계장일이다.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 하루종일 참았다가 한꺼번에 볼 일을 봐야 하고 근무하는 동안 단 한순간도 앉을 수도 없을 만큼 고된 일을 했지만 결국 부상을 당했고 해고를 당했다. 치료를 위한 무급휴가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프면 잘리는 현실이 그가 처음 맡은 일자리이다. 그가 다시 찾은 일자리는 아파트 경비원이다. 아파트 경비원일을 처음 하게 된 그에게 선배 경비원은 말한다. 경비원은 늙은 소라며 그저 주는 대로 받고 시키는 대로 일하면 된다고, 갑질이라고 부르는 등쌀을 잘 견뎌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잡역이 100여 가지나 되고 수십 가지 비정형적 업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주어지는 경비원 업무, 쓰레기 치우기, 주차관리 등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면서도 사람대접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현실들이 당사자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실렸다. 주어진 업무가 많아 몸도 힘든데 매일 같이 자른다는 말을 들으며 갑질을 하는 주민들에게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고, 몸이 아파도 쉴 수조차 없고 아프면 그만두라는 소리를 들어야하는 현실을,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해도 관리소장이나 자치회장의 심기를 거스르면 시말서를 써내야하고 시말서 세 번이면 해고를 당해야 하는 처지란다. 그동안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은 경비원들은 있었지만 처우 개선은 전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조정진 작가는 아파트 경비일을 하면서도 생활비가 모자라 고층빌딩 주차관리원 일까지 했다. 24시간 격일 근무제이니 두 군데에서 일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지만 몸은 부서졌다. 아파트 경비원 일도 고되지만 빌딩 관리인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역시나 인간적이지 않은 정서적, 육체적 학대가 지배하는 노동환경이다.

 

졸음을 이기기 위해 봉지 커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생으로 씹어 먹으며 일해 왔는데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병을 얻었고 해고당했다. 병을 얻은 그에게 의사는 과로를 넘어 자해에 가까운 노동을 했다고 말한다.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고자 한 일인데 자해에 가까운 노동이라니 이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곳곳에서 비정규직들이 얼마나 열악한 처지에서 일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런 글을 만나면 여전히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구나, 노동이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왜 이럴까라는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임계장 이야기>는 감히 겪어보지 않고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차별을 일러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나는 늘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이처럼 값지니까. 당사자가 못하면 언론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가 죽어야만 들끓는 관심이 아니라.

 

수많은 경비원들의 절박한 외침을 담은 <임계장 이야기>의 끝에 조정진 작가는 가족들에게 이 책으로 몰랐던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말기 바란다고 부탁했다. 이 말에 또 한번 울컥했다. 수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감춰온 아픈 몸, 부당한 노동현실이 <임계장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을 테니 . 임계장, 고다자는 경비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고다자 현실에서 무너져내리고 있다. 살만한 세상이 아니다. <임계장 이야기> 이후에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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