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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수희씨와 책읽기(종료)

<99호> 위드 유! ‘김지은입니다’를 읽다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회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7. 28.

 

성범죄자 안희정의 위력을 실감했다. 어머니 상을 치르기 위해 일시 석방된 성범죄자 안희정에게 대한민국 대통령과 민주당 인사들은 조화를 보내고 대거 조문을 가고 언론은 그에게 마이크를 내주었다. 그는 마치 범죄자가 아니라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 취급했다. 다행히(!) 공금으로 조화를 보내지 말라는 문제제기도 나오고 비판이 나왔다. 안희정의 위력을 다시 확인하면서 피해자 김지은을 생각했다. 2차 피해는 진행 중이다. 분노와 연대의 마음으로 책 <김지은입니다>를 주문했다. 책이 도착하기도 전에 박원순 서울 시장 사건이 터졌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성추행 의혹으로 피소되자 죽음을 선택했다. (비겁하다!) 그 이후 벌어진 일들은 (차마 글로 쓰기가 뭐 할 정도로) 한심하다. 박원순 시장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그를 엄호하는 수많은 명망가들, 그리고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고소인으로 부르며 2차 가해를 서슴치 않는 사람들이 큰 목소리를 냈다. 게다가 모 여성 아나운서는 공개방송에서 지난 4년 동안 뭘 하고 이제 와서 문제제기를 하느냐고도 했다. 젠장!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을 배운 걸까?!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인가?

 

답답하고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김지은입니다>를 읽었다. 그가 고통으로 써내려간 글에 놀라고 화내고 눈물을 훔쳤다. 안희정이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피해자인 김지은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잘못은 안희정이 했는데 세상은 김지은에게 2차 가해를 했다. 부끄럽지만 나도 지난해 <미투의 정치학>을 읽고 나서야 피해자 김지은의 입장에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위계에 의한 위력이란 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그동안 뭘 했느냐고 묻는 건 명백한 폭력이다. <김지은입니다>는 안희정 성폭력을 고발한 기록이다. 피해자 김지은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왜 당했는지, 수행비서로서 어떻게 일해 왔는지, 안희정이 어떤 사람인지, 정치인을 위한다는 그 조직의 힘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볼 수 있는 기록이다. 140시간을 일했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심부름을 해야 했으며 안희정의 사적인 업무를 위해 개인 돈을 써야 했고, 열 감기 몸살을 앓으면서도 한밤중에 불려가 사적인 모임을 가진 안희정 부부의 대리운전을 해야 했다. 김지은은 신분과 계급이 존재하는 세계에 살았다고, 안희정이 얼마나 권세를 누렸는지를 세심하게 보여줬다.

<김지은입니다>는 피해자 김지은이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기억을 끄집어내어 한 단어, 한 문장으로 표현함으로써 고통을 뭉개지 않고 가지런히 언어로 기록하고 싶었다고 썼다. 피해자 김지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싸움은 기록을 남기는 거라고, 너무나 힘들었지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글로 쓰는 것이라고 그래서 숨 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경험을 피해자의 언어로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싶었다고 한다. 참 잘한 일이다. 평화학자 정희진은 가해자를 떠나보내는 복수 비법으로 상대를 없애 비인간화 시켜 물화시킨 다음 피해 상황을 텍스트로 만든다고 했다. 글의 힘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김지은을 살리고 김지은을 보통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되리라.

 

성범죄자 안희정은 개쓰레기. (내 글에 욕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욕을 안할래야 안할 수 없다.) 안희정은 제 손으로 뭐하나 하는 게 없는 권위에 은 개쓰레기다. 피해자 김지은을 이상한 여자로 만든 안희정 부인, 안희정 하수인들 행태도 끔찍하다. 그들이 꾸며낸 거짓말을 열심히 보도한 언론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두 번, 세 번, 네 번 참 많이도 죽였다.

 

피해자에게 2차 가해만 저지르는 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김지은입니다>에는 김지은이 고통 속에서 여러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는 이야기도 나온다. (활동가인 나도 나를 돌아본다. 피해자들과 함께 하지 못한 순간이 떠올랐기에.) 김지은과 함께 고통을 나눈 활동가들에게 다시금 경의를 표하고 싶다. 김지은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길 바란다. <김지은입니다>를 읽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그래서 또 다른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지금과는 달랐으면 한다. ‘피해호소인이란 말로 피해자를 욕 먹이는 행태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보통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김지은의 바람이 소원이 아니라 일상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하고 싶다. 위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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