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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수희씨와 책읽기(종료)

<98호> 굿바이 하는 날까지! 굿바이 하는 날까지! 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회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7. 28.

1억원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난생 처음으로 피고가 됐다. CJB청주방송 이두영 이사회 의장이 대책위가 지역신문에 낸 광고를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의 명예가 너무나 큰데 내가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비슷한 광고를 할 경우 1건당 1천만 원을 내라고도 한다. 처음 소장을 받고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또렷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멍했다. 정신을 차렸다. 기분이 나빴다. 이내 이게 바로 이두영 의장이 원하는 거겠구나 싶었다. 활동가에게 떠들지 말라고 겁박하는 양XX 같은 인간이라니. 이재학PD사망사건 대책위 변호사들이 법률 대응을 맡기로 했다.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대책위에 다른 활동가들의 연대도 뜨겁게 느꼈다. 전 충북민언련 대표이자 지금 옥천신문 오한흥 대표는 이제야 세상이 이수희를 알아주는 게 아니냐.” 고 농을 건네 한참을 웃기도 했다.

 

충북민언련 활동가로 살아온 지 17년 만에 이런 소송까지 당하니 자연스레 활동가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사실 나는 격렬한 투사형 활동가는 아니다. 단식이나 삭발 투쟁 뭐 이런 건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로 공감 받고 싶었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로 한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며 충북민언련만의 서사를 만들어왔다고 자부한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충북지역 언론의 문제를 알려내려고 애써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 활동가로서 고민이 커져만 가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여러차례 이 지면을 통해서도 밝혀왔듯 나는 적당히 힘이 빠졌다. 난 열심히 해왔다고 항변하지만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다. 언론개혁이라는 화두가 하루아침에 뚝딱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자꾸 힘에 부친다. 활동가로서는 내가 부족해서 이만큼 밖에 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난 오랜 시간을 혼자서 상근활동을 해왔다. 후배 활동가를 키워내지도 못했고 우리 단체는 커지지도 못했다. 점점 더 어려워져 최근 몇 달 동안 활동비도 온전히 받지 못하는 형편에 이르기 까지 괴롭다.

 

혼자 활동하지만 내겐 친구들(?)이 있다. 내게 힘내라고, 이렇게 해보라고, 같이 해보자고 말해주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친구들 중에 가까웠던 이가 바로 최윤정 전 충북청주경실련 처장이다. 윤정 언니가 작년에 활동가 생활을 굿바이했다. 시민단체에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며 이 바닥을 떠났다. 나랑 이야기가 잘 통하던 언니가 떠나가니 무척이나 서운했다. 영영 못 보지는 않겠지만 같은 활동가로서 나누던 고민의 크기와 색깔은 이제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윤정 언니가 떠나면서 내게 선물한 책이 있다. 바로 한겨레 21 편집장을 지냈던 고경태 작가의 <굿바이, 편집장>이다. 고경태 편집장이 2009년도에 출간한 책 <유혹하는 에디터>는 글쓰기 강의를 할 때 꼭 빼놓지 않고 추천했으며 내 활동에도 유용하게 써먹었다. 유혹하는 에디터 이후 십년 만에 다시 고경태의 편집론을 만날 수 있으니 반가웠다. 이번엔 책 제목 탓인지 더욱 남다르게 다가왔다. 윤정 언니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대학시절 나는 신문을 만들었고 윤정 언니는 교지를 만들었다. 건축잡지에서 일한 경험도 비슷하다. 편집, 출판에 대한 이해와 활동가의 경험까지 비슷한 경험이 공감대를 많이 만들어냈기에 더 친해졌다.

 

매체를 만드는 편집자는 아니지만 단체 일이나 삶이나 모두 편집, 선택의 연속이다. 내가 무엇을 선택할지, 어떻게 기획할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편집장은 기획하고, 결정하는 존재이다. 기획력이 좋아야 유능한 편집장 소릴 듣는다. 고경태 작가의 말대로 편집장이 도태되면 매체는 시든다. (뜨끔하다.) 내가 힘이 빠지면 단체 활동에도 힘이 빠지기 마련일 터. 나는 애쓰고 있다. 힘을 내보려고 말이다. 좀 더 나은 선택으로,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내가 만들어나갈 때 (좀 거창하지만) 세상도 달라지지 않겠는가라는 믿음으로.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깟 명예훼손 소송에 기죽지 않을 것이다. 시들시들했던 마음을 단단하게 묶어 볼 참이다. 언젠가 굿바이할 수 있도록 잘해보고 싶다. 내게 힘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과 함께이니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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