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가 아프다. 열이 나더니 콧물이 줄줄 흐르고 기침까지 한다. 작은 가슴이 그르렁 소리로 가득 찼다. 아가는 힘들어서 그런지 자꾸만 품속을 파고든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 모든 어미들이 왜 이렇게 말하는 지를 이제야 알겠다. 아가에 고통을 없앨 수만 있다면 정말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흔한 감기를 앓는 아가를 지켜보는 것도 이리 마음 아픈데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엄마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잠 좀 못자고, 하루 종일 안고 업고 하는 일을 힘들다고 투정부리기가 민망하다.
다시 봄이 왔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이후 두 번째 맞이하는 봄.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이렇게 봄이 다시 왔다. 나는 잊고 지냈다. 세월호 청문회도 제대로 챙겨보지도 못했다. 간간이 세월호 사건 관련 보도를 보면서 눈물을 찍어내고,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이들을 보면서 고마워할 뿐이다. 나 같은 이들을 위해 세월호의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내라고 애쓴 이들이 있다. ‘세월호’를 이야기하고 기록하는 사람들이다.
재단법인 진실의 힘에서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라는 책을 펴냈다. 세월호기록팀은 15만쪽에 이르는 수사 및 재판 기록, 국정조사특위 자료뿐 아니라, 3테라바이트 분량의 음성·동영상·사진 자료를 일일이 분석하고 검토해 세월호가 침몰할 때까지 101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밝혀냈다고 한다. 그 시간동안 선장과 선원들은 무엇을 했는지, 승객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해경은 승객들을 구하지 않았는지, 배는 왜 침몰했는지, 사고가 날 때까지 세월호와 청해진해운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일을 했는지 등을 밝혀냈다. 세월호기록팀은 방대한 자료를 객관적으로 검토하면서 “구할 수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읽는 동안 책을 던져버리고 외면하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끝까지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쓰면서도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승객들을 버리고 방치한 이들처럼 비겁해지진 않겠다는 다짐으로 버텼어요.” 세월호기록팀 저자 박다영, 박수민씨의 인터뷰를 신문에서 봤다. 10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세월호 진실을 규명해내기 위해 방대한 자료에 조각들을 끼워 맞춘 그들이 참으로 고맙다. 다 읽지 못하더라도 구입해서 갖고만 있어도 세월호 사건을 덮으려고만 하는 이들에게 맞설 수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 또 하나 있다. 4.16 작가기록단이 생존학생과 희생학생의 형제, 자매들을 인터뷰한 책 <다시 봄이 올거예요>이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에 이은 두 번째 인터뷰집이다. 희생 학생들의 부모들 이야기는 그동안 언론이나 집회 등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지만 형제, 자매들이나 생존학생의 이야기는 언론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친구를, 형제, 자매를 잃은 또래의 친구들은 지난 2년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4.16작가기록단 언론 인터뷰를 보니 그들에게 “국가는 정의롭지 않았고, 공권력은 폭력적이었으며, 언론은 왜곡보도로 일관했으며, 사람들은 자식을 잃고 형제나 친구를 잃은 피해자들을 모욕했을 뿐”이다. 그들이 바라는 건 “함께 기억해달라는 것, 세월호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함께 밝혀달라는 것”이란다.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읽는 이도 참 아프기만 한 이 소중한 기록들을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해 준 모든 사람들이 참 고맙다. 여전히 2014년 4월16일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에 이야기를 이렇게나마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 같은 이는 이렇게 책으로나마 함께 기억하고 아파하고 하는 일이 전부이겠지만 정치권과 언론은 이제라도 좀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닐까. 세월호 변호사라 불리던 박주민 변호사를 국회에 보내기 위해 희생학생들의 부모님들이 묵묵히 선거운동을 도왔다는 글을 보면서 울컥했다. 부디 20대 국회는 세월호 특별법을 재개정해 진상규명에 나섰으면 좋겠다. 더 이상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이들에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자식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가가 아프다는 핑계로 주문해놓고 읽지 못한 이 책들을 4월이 다 가기 전에 어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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