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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수희씨와 책읽기(종료)

<제50호> 우리에게 온 소년, 다시 밝은 빛으로 찾아갈 수 있게… 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6. 16.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소식에 세상이 떠들썩하다. 나는 맨부커상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십분단위로 작가에 책이 몇백권씩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간다니 대체 어떤 소설일까 궁금하다. 영어를 잘한다면 번역본을 읽어보고픈 마음도 든다. 그러나 고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차마 <채식주의자>를 읽기가 좀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 고기 먹기가 힘들어질까봐 겁난다면 웃을라나?!) 그동안 한강 작가 소설은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 <채식주의자> 대신에 그 어느 해보다 뜨거운 오월을 보내면서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5.18 광주민중항쟁 (공식 명칭은 광주민주화운동이지만 나는 민중항쟁으로 부르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한다)을 다룬 소설 가운데 최고의 찬사를 받는다니 그 전부터 꼭 읽어봐야지 했던 소설이다. <소년이 온다>1980518일부터 27일까지 뜨거웠던 열흘, 도청에 남았던 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아픈 이야기다. 소설은 그들에 고통을 참으로 덤덤하게 (그래서 더 아프다) 눌러썼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동호는 친구 정대를 찾아 제 발로 도청을 찾는다. 정대는 동호네 집 사랑채에 세 들어 사는 친구다. 정대 누나 정미는 공장을 다니며 돈을 벌고 정대 몰래 동호에게 책을 빌려 공부하며 꿈을 키웠다. 동호는 군인들 총에 맞아 험해진 시체들을 닦고 그들을 위해 초를 밝히며 혼이 있을까, 혼이 있다면 어디로 가고 있을까생각한다. 어린 동호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너는 죽은 사람이 무섭지 않으냐고. 동호는 군인들이 무섭지, 죽은 사람은 무섭지 않다며 사람들을 죽게 한 군인들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정대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도청에 끝까지 남았던 동호도 결국 죽음을 맞는다.

 

동호가 그토록 찾던 정대는 이미 죽었다. 정대에 몸은 수많은 시체더미에서 썩을 대로 썩어간다. 정대의 혼은 군인들이 계속해서 시체를 실어나르는 모습을 똑똑히 목격한다. 그 군인들 눈앞을 어른대며 정대의 혼은 육신을 빠져나와 끊임없이 질문한다. 누가 나를, 누나를 죽였을까를. “비록 혼이지만 그들에게 가야 한다. 나를 조준한 눈,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왜 나를 쐈지?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어른거리고 싶다고정대의 혼은 누나의 혼을 만났을까. 죽어서라도 누나에 손을 잡았을까.

 

이야기는 이제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다. 살아남아 빨갱이년이라고 모진 고문을 당했던 은숙 누나와 선주누나 이야기다. 어린 동호에게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야기하던 누이들, 카스테라를 쥐어주며 먹으라던 누나들이다. 누나들에 삶은 장례식이 되었다. 살아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닌 치욕스런 삶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당했던 고통을 이야기해달라는 사람에게 선주누나는 삼십센티 나무 자가 자궁끝가지 수십 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짖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동안 하혈이 계속됐다고....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된다 ……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있다는 치욕과 싸우고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운다고 살아남은 이들은 말한다. 아물지 않는 그 상처들 때문에 술과 진통제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고 시간이 갈수록 더 또렷해지는 아픈 기억들에 짓눌려 사는 이들이다. “그저 겨울이 지나간게 봄이 오드마는 봄이 오면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면 지쳐서 시름시름 않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라는 동호의 어머니의 독백을 통해서 자식을 잃은 어미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린다고 말하는 것도 사치스럽다.

 

그해 오월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팔십만발,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던 이들,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함께 했던 어린 소년과 누이들, 도청에 남은 이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문을 꼭 걸어잠그고 고통을 삼켜야 했던 광주. 36년이 흐른 지금. 광주는 어떻게 살아있는가. 작가의 말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된 게아닌가 싶다.

 

광주정신을 모독하는 일은 계속된다.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보훈처는 당시 광주를 짓밟았던 공수부대의 광주 금남로 시가행진을 계획했다가 취소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도 5.18 광주민중항쟁 기념일마다 불거진다. 시민들에게 총을 쏘라고 명령한 혐의를 받는 전두환은 유족들의 오해가 풀린다면 광주에 가서 돌을 맞겠다는 망발로 광주시민을 모욕한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바란다는 동호의 이야기에 우리 사회는 과연 답할 수 있을까? 소설이 픽션이 아니라 역사적 기록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소년이 온다>는 충분히 보여준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제대로 써달라는 동호 형의 부탁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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