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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수희씨와 책읽기(종료)

<제96호> 선거 끝나고 다시 생각하는 민주주의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4. 28.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고, 세대교체에 대한 바람도 크기 때문에 변화를 기대했다. 지역에선 환경 이슈가 많아 총선을 앞두고 여러 의제들을 두고 후보나 정당들 간에 논쟁이 달아오르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코로나 19 정국이 길어지면서, 지지했던 후보가 공천과정에서 패배하면서 이번 선거도 그러려니 했다. 높은 투표율로 선거는 끝났고, 국민들은 이번에도 현명하게 표로 심판했다.

 

그렇다면 우리 지역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오제세 의원은 컷오프 됐지만 71세 나이의 변재일 의원은 더 이상 출마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세대교체 요구를 무마시키며 출마에 나섰고 방사광가속기 유치 사업을 내세워 5선에 성공했다. 정우택 의원과 맞붙은 도종환 의원은 아시안 게임을 유치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우고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LNG발전소를 반대한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당선됐다. 행사장에 인사 다니는 모습 외에는 별다른 모습을 보지 못했던 정정순 후보는 고위 관료 출신의 행정경험을 경력으로 내세워 당선됐고, 하루아침에 지역구를 바꿔가며 공천 받은 이장섭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시종 지사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을 내세웠다. 충북지역 8개 선거구에서 당선돼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선거기간 내내 떠들던 정우택 의원은 똑 떨어졌다.

 

지역 유권자들은 이들이 내세운 힘 있는 여당 후보, 지역개발 공약, 코로나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를 표로 보여줬다고 봐야할까. 어쨌든 미래통합당이 심판 받았으니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될까. 민주당이 승리한 선거라지만 별다른 기대감조차 생기지 않는 건 왜일까. 21대 국회는 20대 국회와는 확연히 다른 성과를 보여줄까? 이제 양대 노총에서도 국회에 진출했으니 노동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들에 삶의 질은 좀 나아지려나이런 고민들 끝에 다시금 집어든 책은 바로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이다.

 

2002년에 처음 나오고 여러 차례 개정판이 나왔지만 최장집 교수가 진단하는 한국사회 민주주의 문제는 여전하다. 최장집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면서 정당체제가 발전하지 않았고 보수화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 정당은 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표출하고 대변하며 공익과 공공선에 대한 여러 경쟁적인 논의와 이슈들을 정책으로 만들고 대중을 동원하는 역할을 하지 않고 냉전반공주의에, 지역주의에만 기반하고 있어 문제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지금에 정당은 엘리트들이 독점하고 있다며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는 서민층이나 노동이 정치과정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한다.

 

최장집 교수는 한국정치는 언론이 움직인다고도 주장했다. 대기업화된 거대언론이 여론시장을 독점해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언론은 구질서와 냉전반공 헤게모니의 수호자이자 대변자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언론이 지배하는 정치라서 정치 수준이 요 모양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이번 선거에선 주류언론 아니 극우 보수 언론의 힘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최장집 교수는 중앙정부의 예산과 개발 이익을 둘러싼 협소한 갈등이 전국을 지배한다며 사회구성원 전체가 자기 지역 위주의 개발이익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시민성을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진단했다. 최장집 교수는 지역개발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란 국가의 재정지출을 둘러싼 정당정치인, 기업, 지방자치정부, 이 정책으로 혜택을 보는 지역의 수혜자들 사이의 이익연합정치가 주 내용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 과정에는 지역의 민주주의도 생략된다. 여야 모두 개발정책엔 찬성을 한다. 찬반만 있지 사회적 합의가 없다. 시민사회도 개발 이익과 관련한 이슈에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다.

 

정당의 보수화, 국민의 실질적인 삶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여야 정치권도 문제이고, 진보정당의 약세도 문제이고,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로 망쳐진 연동형 비례대표제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게다가 어느 정권이고 할 것 없이 개발공약들을 내세워 지역을 경쟁하게 하면서 세금을 낭비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연을 파괴하는 행태들이 반복되는 현실도 무섭다. 이제 여당이 180석을 얻었으니 한국의 민주주의는 좀 나아질까?!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4년마다 투표로 심판할 순간을 기다려야 하는 건가?! 낙담만 할 순 없다. 최장집 교수의 제언대로 정치가 후지다고 정치를 없애서는 안 될 일이다. 지금보다 더 민주주의에 관한 비판적 논의와 논쟁이 존재하는 사회로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 논의와 논쟁으로 우리 사회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정당은 정책 경쟁을 벌이고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통해 참여하고 실천하고 언론은 특정 세력의 이익이 아니라 여론을 반영하는 공론장의 역할을 한다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다음 개정판은 좀 다르게 쓰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멈췄다. 너무 빤한 결론 앞에서 이걸 왜 여태껏 못하나 싶어 화가 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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