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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수희씨와 책읽기(종료)

<제94호> CJB 부당해고 노동자 이재학 PD의 죽음 앞에서 … 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2. 26.

 

끝까지 싸울 겁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지난해 7월 처음으로 만난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이다.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프리랜서라 불리는 노동자,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재판에서 꼭 이기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증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무려 15년을 일했다. 그는 정규직 직원 못지않게 아니 더 열심히 일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여러 번 물었다. 어떻게 그런 대접을 받으며 오래도록 일할 수 있었냐고. 그는 일하는 게 재밌었다고, 사명감을 갖고 일했노라고, 수많은 밤을 회사에서 지새우면서도 힘든 줄 몰랐노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보다 동료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임금 인상을 요구한 것도 동료들을 위해서였다. 내가 이 문제를 지역사회에 알리자고 이야기했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도 동료들이었다. 자신을 위해 증언해준 동료들이 지금 회사로부터 압박을 많이 받는다며 상당히 조심스럽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말했다. 지역사회에서 CJB청주방송 대주주인 이두영 회장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노라고, 그래서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겠노라고, 법을 통해 꼭 노동자 지위를 확인 받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는 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거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 고맙다고 말하고 일어섰다. 그 이후 재판소식이 궁금해 연락했을 때는 회사 측이 재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지연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그렇게 재판이 늦어지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부고 소식을 들었다. 나는 결국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가 긴 시간을 외롭게 싸우고 있을 때 힘이 되어 주지 못했다.

 

법적으로 프리랜서가 아니라 노동자임을 인정받고자 했던 그에게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를 변호했던 이용우 변호사는 CJB가 고인의 동료에게 회유와 협박을 하고 위증을 했으며, 그의 노동자 지위를 확인한 법률 검토를 미리 마쳤으면서도 재판 과정에서는 모른 체 했다고 말한다. 재판부는 고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동료들의 진술서를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반면 CJB가 제시한 증언들은 적극 인용해 결과적으로 CJB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이 역시 CJB의 대주주 이두영 회장의 힘이 작용한 것일까?

 

CJB는 지난 7일 임직원 일동의 명의로 진상을 규명하고 프리랜서 처우개선에 나서겠다는 짧은 입장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CJB는 밝히지 않았다. 벌써부터 CJB가 제대로 진상조사를 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CJB는 지난 172차 입장문을 내고 유족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릴 것과 간부진의 보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CJB의 대주주인 이두영 회장은 언론 취재에 자신은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책임을 회피한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보름이 넘도록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CJB가 자료를 은폐하려 한다, 유족에게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들뿐이다.

 

그가 죽고 나자 많은 단체에서 성명을 발표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방송노동계의 현실을 비판했다. 지역에서도 노동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해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PD 사망사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전국적인 대책위원회도 꾸려졌다. 지난 19일엔 CJB 청주방송 앞에서 결의대회도 열어 고인의 명예회복을 외쳤다.

 

그가 살아서 외롭게 싸울 때 연대하지 못했던 책임으로 너무나 부끄러웠다. 결의대회가 열리는 차가운 길바닥에 앉아 생각했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끝까지 싸우겠노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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