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처음 읽은 책은 돌아가신 황현산 선생의 트윗을 엮은 책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이다. 선생이 트윗을 시작한 2014년 11월부터 2018년 6월까지의 트윗이 담겼다. 트위터, 140자를 쓸 수 있는 공간이다. 각기의 짧은 140자들을 모아 놓으니 666쪽이나 됐다. 많다면 많을 수도 있는 양인데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손에서 책을 내려놓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나도 황현산 선생을 팔로우했다. 선생의 트윗을 읽으며 공감했고, 추천해주는 책들을 부러 찾아보기도 했다. 트위터로 볼 때도 좋았는데 책으로 묶인 글들을 보노라니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황현산 선생은 트윗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고 공들였다고 한다. 비단 직업정신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반지성의 시대에 넘쳐나는 수많은 폭력적인 말들에 저항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의무감이 더했으리라. 황현산 선생은 지성이 곧 인간성이라는 것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보내면서 뼈저리게 느낀다고 했다. 선생이 한창 트윗을 하던 그 시기는 바로 박근혜 정부였다. 선생의 트윗은 국가와 정치에 관련한 내용이 많다.
황현산 선생은 인간이 어떤 경우에도 그 위엄을 잃지 않고 살 수 있게 하는 일이 국가가 먼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권이 국민을 끊임없이 뺑뺑이 돌림으로써 유지된다고, 국가가 사기 조직의 원형인지도 모르겠다고 했으며, 파시즘이 안방을 차지하면 반민주적일뿐만 아니라 반지성적이고 반과학적이며 미신이 그 철학이 될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자 바닥에 떨어진 대학 언론 사법의 권위를 회복해야 할 시간이라고도 했으며, 정권이 교체되면 반민주 행위 처벌법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황현산 선생은 노인이었지만 생각이 늙지도 낡지도 않았으며 일방적으로 젊은이들을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다. 세월호 이야기가 지겹다고 말하는 늙은이들에게 다르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모든 것이 지겨워지는 법이라 말했던 선생은 늘 새롭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졌다. 선생의 트윗엔 “나이가 들더라도 배우기를 그치지 말고 참신하게 생각하도록 노력하라”는 말도 찾아볼 수 있다. 준비만 하다가 갑자기 늙어버린 것 같다며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어 황당했다는 선생이지만 돌아보면 그만한 어른도 찾기 힘들다. 시대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문화 예술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공들인 말들로 정확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던 선생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기에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라는 책이 나오고 많이 팔리는지도 모르겠다.
황현산 선생은 떠났다. 그토록 바라던 반지성의 시대는 끝났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 어느덧 반이 지났다. 세상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조국 사태에 쏟아진 말들만 놓고 본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생각한다. 찬성과 반대, 비난과 비판, 조롱과 빈정거림…. 수많은 말들에 치여 민주주의니, 검찰 개혁이니, 과정의 공정함이니 따위의 말들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요즘 나는 어지러운 세상에 내 말 한마디 더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나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만큼 게을렀다. 그러면서 어른이 없네, 비판이 없네, 말들이 가볍네 하며 빈정거렸다. 부끄럽다.
황현산 선생은 “민주 사회라고 해서 어떤 말이나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을 행동으로 옮겨 범죄가 된다면 그 말도 범죄가 된다. 그 행동이 파렴치하다면 그 말도 파렴치하다.”고 했다. 막말에만 쓰이는 조언이 아닐 것이다. 선생은 또 아이 기를 살려주려면 정직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길러주라 했는데 이 말 역시 아이를 기를 때에만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황현산 선생의 말들을 읽으면서 말 한마디, 글 한 줄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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