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부터 5일까지 인권연대 숨 일꾼으로써는 처음으로 제주 4.3 기행을 다녀왔다. 개인적으로는 2번째 제주 방문 경 험이었다. 사실 첫 번째 제주 여행 때에는 공항에서 많은 부분들에 불편함을 느끼고는 했었다. 항공사 관계 직원들 모두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이용객으로 처음 만나는 듯 느껴졌고 배터리 분리 포함 탑승과정 자체가 매우 험난했었다. 하지만 이 번 기행에서는 동료 일꾼님의 사전 준비와 대형항공사를 선택한 영향으로 배터리 유형을 잘못 알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탑승과정이 전반적으로 매끄러웠다. 항공사 직원들이 ‘안된다’거나 이용의 어려움을 표현하지 않은 것이 새로웠다.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브릿지 연결 외에 리프트 카로 항공기에 오르내리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아시아나, 대한항공, 진에어(1기)와 같이 일부 대형항공사들만 리프트카를 소량 보유하고 있다는데 생각보다 탑승감이 훨씬 안정적이었다. 한 편으로는 다행이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접근권에 기반한 편의시설조차 자본의 힘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제주에 무사히 도착한 이후 첫날은 비바람이 세게 몰아치는 날씨 속이었지만 숙소에 도착해 맛있는 저녁과 함께 무사히 하루를 마쳤다.
둘째 날은 안덕 동광 마을의 4.3길을 생존자 할머니의 설명을 들으며 함께 걸었다.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수백명의 사람들과 당시 무등이왓 마을에서 삶의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파괴와 학살로 벌판만이 남았지만 당시 삶의 현장들을 상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그러한 일상들이 1948년 11월 15일 토벌대에 의한 최초 학살을 기점으로 무너지게 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큰넓궤라는 동굴로 피신하여 수개월간 학살을 피하여 살아갔던 이야기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큰넓궤에 나온 이후의 학살 속에서 수용소에 오랫동안 감금되어 살아남으신 이야기, 직접적인 학살은 피했지만 굶주림으로 어린 동생 두 분을 잃어야했던 이야기까지 전해 주셨다. 이 모든 과정들이 당시 11세에 겪으셨던 경험이셨기에 그 어떤 설명을 읽는 것보다 현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제주 4.3 항쟁은 끔찍한 국가폭력의 역사이며 이에 대한 저항과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담고 있는 역사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픔들과 더불어 제주도민들의 일상과 삶이 존재해 왔으며, 4.3 이후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이 존재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설명을 열정적으로 해 주시던 할머니에게 이러한 힘든 이야기들을 계속 전달해 주시는 것이 힘들지 않으시냐는 동료 일꾼의 질문에 ‘나는 살아남아서 젊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것이 영광’이라고 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아픔과 상처를 상처로만 남기지 않으시고 그 기억들을 후세에 전달해 주시는 과정 속에서 삶의 에너지와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모습들이 멋지게 느껴졌고 ‘본받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할머니의 설명과 함께 동광마을의 행로를 마치고 향한 곳은 알뜨르 비행장이었다. 넓은 벌판 속 일제에 의해 지어진 전투기 격납고 자리들을 볼 수 있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와 같이 지금도 여전히 군사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제주의 현실이 평화로운 들판과 상반되어 편안한 와중에 씁쓸함이 느껴졌다.
셋째 날은 호우주의보가 예고되었지만 생각보다 날씨가 좋아 숙소에서 점심을 먹고 제주 시내의 이아 미술 전시관을 다녀왔다. 매년 4월마다 4.3을 주제로 새로운 작품들을 전시를 한다고 한다.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예술가들이 표현하는 제주의 4월을 느껴볼 수 있었다. 굴곡지지만 굳건하고 시원하게 뻗어있는 팽나무를 그린 그림은 제주의 역사를 잘 드러내 주는 것 같았고 핏물이 차 있는 동굴 안에 사람들의 눈이 그려져 있는 그림의 경우 당시 사람들의 고통과 한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한국의 제주 4.3 항쟁, 광주 5.18 민주화운동과 같은 저항의 역사와 현재 미얀마에서 이루어지는 군부에 의한 국가폭력과 여기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의 상황을 연결하고 연대하는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전시회를 다녀온 후 제주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숙소로 돌아왔다.
넷째 날은 자유여행의 날이었다. 개인적으로 바다를 좋아하기에 애월 해변 근처를 활동지원사 형과 함께 돌아다녔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 돌아왔다. 바람이 많이 불어 날씨가 추워 밖에 오래 있기는 어려웠지만 광활히 펼쳐진 바다와 높게 치는 파도에서 시원함이 느껴졌다. 카페에 들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장애인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는 점이었다. 화장실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권리는 기본적 권리임에도 공공건물을 제외하고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화장실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카페에서 장애인화장실의 발견이 매우 반가웠다.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으며 저녁에는 함께한 분들과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돌아오는 날은 가장 화창하고 맑은 날씨의 제주 하늘을 느낄 수 있었다.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청주로 돌아왔다.
인권이 무참히 짓밟혔던 어두운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분명히 아픈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들의 피와 저항이 우리들이 인권을 이야기하고 인간다운 삶을 기본적 권리로 요구하고 저항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억되지 않고 잊혀진 역사의 아픔들은 분명히 다시 반복될 수 있고 반복된다. 이와 동시에 생존자이자 해설사 할머니의 말씀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제주 4.3은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는 이야기이다. 그 삶을 기억하고 연대할 수 있을 때 우리 안에 각자의 소수자성들과 역사성 속에서 삶들이 연대할 수 있게 된다. 즉 4.3, 5.18 미얀마가 연결되어지며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장애인권 역시 다양한 역사의 현장과 삶들에 연결되어졌을 때 사회를 변화시키는 더 큰 연대의 힘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다크 투어라고 부를 만큼 역사 기행이 가벼운 것만은 아니지만 좋은 사람들과 의미 있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삶과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함께 숨 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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