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저상버스 타고 쏘댕기기 2탄으로 국립현대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갈 수 있는 문화적 공간들이 많지 않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 살았던 곳에서 가장 가까웠던 영화관에도 장애인석이 존재하지 않았죠. 그러다 보니 맨 앞에서 목을 뒤로 젖힌 채 영화를 보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서 내려 일반 좌석에서 봐야 했습니다. 장애인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장소를 찾아가기에는 타고 갈 수 있는 장애인콜택시와 저상버스도 거의 없었고요. 또한 저를 포함해 많은 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떨어진 곳에서 통제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내가 문화와 예술을 즐기고 싶어 가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허락을 받아서 가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문화적 공간이 여전히 어색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번 저상버스 타고 쏘댕기기로 국립현대미술관을 갔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이런 낯설음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고요. 청주시의 몇 안 되는 문화적 공간인데 생각보다 제 주위에 안 가 본 사람들이 많아 가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2018년 12월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은 배리어프리(장애없는 공간) 인증기관으로 선정된 곳이더라고요. 정말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폭 넓은 접근성이 갖추어져 있는지 확인하려 했습니다. 즉 미술관의 작품들을 시각장애인, 발달장애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는지도 보고요. 국립현대미술관 주위 건물들의 편의시설과 보행로 등을 살펴보고자 했어요. 마침 ‘우리와 우리 사이’라는 흥미로운 기획전시 작품도 전시되고 있기에 관람하러 가 보았습니다.
우선 인권연대 숨 사무실에서 출발하여 용암동 건영아파트 정류장에서 113번 버스를 탔습니다. 처음에 115, 115-1번 저상버스를 타고 가려 했으나 같은 방향의 113번 노선도 저상버스로 되어 있어서 탑승을 하였습니다. 정류장 공간이 좁아서 휠체어와 리프트의 길이를 맞추기 위해 2-3번씩 버스를 앞뒤로 조정하고서야 탈 수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승객이 많지 않은 여유로운 시간이어서 무례하거나 불쾌한 표현을 듣지는 않았지만 버스가 지체되다 보니 승객들의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게 되었는데요. 정류장의 공간과 사람들의 시선도 저상버스 이용을 어렵게 한다는 친구의 말이 다시 한 번 떠올랐습니다. 다행히 버스 탑승 이후에는 버스기사님이 직접 와서 장애인좌석을 확보해 주신 덕분에 편안히 타고 갈 수 있었습니다. 안전장비의 한계가 여전히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기분 좋게 탈 수 있었어요. 버스 안에서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 도착해서까지 꽤 많은 비가 쏟아지더라고요. 비가 오면 외출이 어려운 이유인 전동휠체어 기기의 특성과 상대적으로 고가이고 획일화된 모델의 장애인우비에 대해 동료일꾼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입구에서 미술관까지 걸어가는데 휠체어와 점자블록이 겹쳐지지 않을 정도의 폭넓은 경사로가 인상적이었어요. 조형물이 설치된 미술관 외부의 공간에도 장애인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어 매우 반가웠지만 작동이 되지 않고 있어 아쉬웠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저희가 함께 본 작품은 우리와 우리 사이라는 기획전시 작품이었는데요. 작품을 보러 가기 전에 휠체어 높이의 발열체크기가 매우 인상적이었고요. 장애인화장실 역시 남녀 구분이 명확하게 되어 있고 벽면에 점자 표기도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와 우리사이”라는 작품은 인간, 동물, 식물을 ‘우리’라는 공동체적 관계로써 바라봄과 동시에 감금 상태로 살아가는 동물들과 식물들의 관계인 ‘우리’의 두 가지 의미를 담아내려 했다고 합니다.
1층과 건물 외부에 일부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주요 작품은 5층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기획전시 작품들을 보며 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인간과 동식물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고요.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를 받으며 감금에 준하는 상태로 거주시설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장애인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우리’라는 작품을 보고 그 속에 들어가 보면서 안전하지만 밖에서 열어줘야 나올 수 있었던, 지난 저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떠올려 볼 수 있었습니다. 또 비어있는 동물원을 그린 작품은 제가 좋아하는 색감으로 이루어져 있었고요. 어릴 때와 달라진 동물원의 의미와 비어 있는 동물원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고민을 작가와 함께 해 볼 수 있었습니다.
기획전시 작품 이후 문화제조창 내부에 식당가가 조성되어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기에 미술관 외부의 식당을 갔는데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는 문화제조창에서 벗어나니 다시 보행로가 좁아지기 시작했고 갈 수 있는 건물들도 많지 않더라고요. 설령 들어갈 수 있다 하더라도 좌식이어서 이용할 수 있는 식당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희가 가려고 했던 식당은 손님이 너무 많은데다 대부분이 원목형 테이블이어서 비 오는 날씨 속에 기다려야 했기에 조금 더 멀리 있던 ‘담쟁이 국수 식당’으로 걸어가 식사를 했어요. 원래 계획은 점심을 먹고 문암생태공원을 가 보는 것이었으나 꾸준히 내리는 비로 인해 다음을 기약하며 저상버스 타고 쏘댕기기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오며 접근성의 기준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국립현대미술관조차도 모든 사람들이 미술관의 작품들을 즐기기에는 한계가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 촉감이나 음성과 함께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았고 작품의 이해가 어려울 수 있는 사람들을 돕는 장치들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건물과 그 주위의 모든 것을 편안하게 갈 수 있었고 층마다 폭넓게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화장실, 휠체어 눈높이의 시설물 등 배리어프리 인증기관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죠.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왜 국립 공공의 인증을 받은 장소에만 이 정도의 접근성이 갖추어져 있느냐 하는 것이었어요. 차별받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권리라면 공공의 영역을 넘어 모든 공간을 이용하는데 장벽, 장애가 없어야 합니다. 여전히 배제와 통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동료장애인들이 시설 밖에서 나와 함께 살아갈 수 있길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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