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을 안 보려다 봤다. 너도나도 오징어게임을 이야기하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오징어게임>은 잔인했다. 사람 목숨값을 걸고 게임을 벌이는 설정도,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게임에 실패한 사람들을 죽여버리고, 장기까지 내다 판다. 잔인한 설정에 놀랐다. 그런데 잔인한 이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게임을 멈추지 않아 더 놀랐다. (하긴 게임을 멈췄으면 이야기는 시작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들이 게임을 멈추지 않은 이유는 바로 막대한 상금 때문이다. 옆에 사람이 죽어 나갈 때는 순간 겁을 먹었지만 쌓여가는 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어차피 게임을 포기한다고 해도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니까. 잔인한 게임 보다 더 잔인한 건 바로 게임에 참가한 이들의 삶이다.
해고를 당하고 이혼을 당하고 늙은 엄마의 등골을 빼먹으며 도박판이나 기웃거리는 주인공 기훈, 서울대 수석입학으로 동네의 자랑이었지만 투자 실패로 거액의 빚더미에 앉은 상우, 엄마와 동생과 함께 살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으려는 탈북자 새벽,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이주노동자 알리…. 그들은 모두 돈이 있으면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폭력도 휘두르고, 옆에 사람을 속이고, 죽이기까지 했다. 게임을 설계한 노인은 “사는 게 재미가 없어서, 어린 시절에 재밌었던 추억을 생각해서 만들었다”고 말한다. 게임의 ‘말’이 되어 살아남기 위해 바들바들 몸을 떠는 그들을 보며 가면을 쓴 부자들은 낄낄거리며 재밌어한다. 이런 끔찍한 설정에 사람들은 왜 그토록 열광했을까?!
전 세계를 강타한 <오징어게임>과 화천대유는 다른 이야기다. 요즘 미디어엔 화천대유 관련 뉴스가 넘쳐난다. 화천대유 속 그들이 나눠가진 수백억의 이익금, 유명한 법조인들, 그리고 정치인의 아들에게 건네진 50억이라는 퇴직금까지! 참으로 기막혔다. 정치인들이나 법조인들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고 돈을 나눠 먹고 있다는 게 증거로 드러난 화천대유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다시금 확인한다. 야당은 연일 화천대유는 누구 거냐고, 대장동 개발을 설계한 ‘그분’이 누구냐고 묻는다. 그들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이재명을 그분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나는 이재명을 지지하지도 않고 그분인지는 관심도 없지만 이재명이 그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큰 판을 설계한 건 ‘자본’일 것이다. 가면을 쓰고 뒤에 숨어 낄낄거리고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는 대체 무엇일까? 아무리 돈이 돈을 버는 시대라지만 불평등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몇십억, 몇백억을 챙기는 그들을 보면서 얄팍한 내 주머니를 떠올리자니 입이 쓰다. 난 몇십억 이런 규모의 돈을 생각도 한 적 없었는데도 말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 21세기 경제를 해설한 책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를 보면 “자본주의적 성장이 만드는 경제적 불평등의 최종 결과는 시민다수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다. 비참하다는 것은 빈곤, 노동의 고통, 노예상태, 무지, 포악, 도덕적 타락이 시민에게 누적된다는 뜻이다. 시민이 자본에 종속돼 시민적 윤리보다 종사자의 무와 각자도생의 경쟁에 더욱 매달리게 된다.” 고 말한다. 책에서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의 해결은 시장의 부분적 조정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변혁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 진단에 공감하면서도 ‘변혁’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최근 <한국의 능력주의>를 펴낸 박권일은 능력주의라는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불평등과 싸워나가자고 설득하기 위해서 책을 썼다고 밝혔다. 박권일은 “격차와 불평등을 동력삼아 모두가 전쟁처럼 살아야 하는 사회는 정의롭지도, 행복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며 “진정 정의로운 사회,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자”고 한다.
나는 요즘 ‘돈’을 마련할 궁리에 바쁘다. 새로운 활동가들이 늘어나 활동비를 마련해야 한다. 화천대유 뉴스 속에 나오는 억 소리를 들으며 짜증이 좀 났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도 마음을 내어 후원해주는 분들 덕분에 여럿이 함께 나아가는 연대의 뜻을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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