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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수희씨와 책읽기(종료)

<113호> 김어준과 진중권 그리고 유재석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9. 30.

나는 한때 김어준과 진중권을 좋아했다. 그들의 말이 무척이나 합리적이고 세련됐다고 생각했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들으며 김어준이 하는 이야기 한마디 한마디에 얼마나 귀 기울였는지 모른다. 나꼼수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흥미로웠다. 기존 언론이 하지 못하는 아니 안하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여러 의혹들은 나꼼수 덕분에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무분별한 폭로가 아니라 팩트에 기반한 이야기라 나름 설득력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김어준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김어준이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김어준은 자신의 방송에서 “~일 것이라 추정된다.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다, 우연이다라는 식의 추정과 소설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김어준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또 문빠들은 우르르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공격을 일삼는다.) 딴지일보가 추구했던 B급 문화나 나꼼수를 통한 정치의 예능화까지는 웃어넘겼지만 음모론으로 공론장을 어지럽게 하는 김어준의 방식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어준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그의 라디오 방송은 여전히 청취율 1위를 자랑한다. 야당에선 실질적인 민주당 대표 아니냐고 비야냥거린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 이슈가 터질 때마다 김어준의 해석과 논평에 귀를 기울인다. <프로보커터>라는 책을 쓴 김내훈은 기성언론을 불신하기에 그가 개진하는 우리 편에 유리한 정파적 해설로나마 불안감을 해소하려 드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보수 언론들도 김어준의 말을 비중있게 보도한다. 비꼬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고 김어준을 비판하지만 김어준의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김어준처럼 보수언론이 요즘 열심히 말을 듣는 이가 바로 진중권이다. 진중권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진중권은 요즘 보수언론에 잘 팔린다. 그가 페북에 한마디 하면 조중동을 비롯한 많은 언론들이 받아쓴다. 보수언론들이 노리는 건 진보논객이라는 그의 정체성일터, 진중권마저 비판하는 문재인 정부라는 여론을 유도하기 위해서 진중권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라고 <프로보커터>에서는 지적한다. 진중권은 모두 까기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가 하는 말들은 더이상 논리적인 치밀한 분석이 아니다. 억지와 상대에 대한 조롱도 많다. 진보지식인이라 불리던 진중권은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김내훈의 책 <프로보커터>는 김어준과 진중권 보다 더 흥미롭다. 주목경제 시대의 문화정치와 관종 멘털리티 연구라는 부제가 붙은 <프로보커터>는 프로보커들이 어떤 방식으로 여론을 주도하는지를 분석한다. 프로보커터는 도발하는 사람을 말한단다. 김내훈은 조회수 자체가 돈이 되고 영향력이 되는 지금 이 시대를 주목경제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관종의 멘털리티는 정치 담론장에서 왜곡과 소란을 일으키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김내훈은 주목 자체가 돈이 되다 보니 이러한 시대에 기민하게 반응해 영향력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언론매체들 역시 소셜미디어에 형성된 에코체임버(비슷한 성향의 사람과 소통한 결과 다른 사람의 정보와 견해는 불신하고 본인 이야기만 증폭되어 진실인 것처럼 느껴지는 정보환경)에서 기삿감을 찾다 못해 소셜미디어를 모방하려 든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이 정말 소셜미디어 때문인걸까? 유튜브가 없었다면 좀 나았을까? 사람들이 모이는 플랫폼에서 벌이는 주목경쟁, 주목을 끌기 위해서 폭력적인 막말이 쏟아지고 이에 환호하는 이들이 모여들고 저마다 편을 갈라 싸우고 신뢰는 깨지고 혐오를 양산한다. 김내훈의 지적대로 사유의 외주화가 일상화되어가는 삶 속에서 프로보커들은 더욱 활개를 칠 게 뻔하다. 앞으로 정말 더 별에 별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최근 <시사인>이 해마다 하는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조사 결과 유재석이 2위를 했다. 유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따위를 조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내겐 흥미롭지 않은 조사였는데 유재석이 2위라서 깜짝 놀랐다. 유재석을 언론인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유퀴즈라는 프로그램 덕분에 얻은 결과란다. 나도 유튜브로 종종 <유퀴즈>를 봤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무엇보다 유재석이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태도와 능력은 돋보인다. 유재석이 잘해서, 특별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정작 사람들이 원하는 건 편가르기나 혐오, 폭력적인 막말이 아니라 양질의 콘텐츠라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건 아닐지 생각했다. 한편 시사인 조사의 1위는 손석희, 3위는 김어준이었다. 유시민도 9위나 차지했는데 진중권은 등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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