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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수희씨와 책읽기(종료)

<110호> ‘노오력’ 한다고 달라지지 않아! 공정으로 포장한 능력주의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6. 28.

 

 

6살 때 친하게 지내던 딸아이 친구는 7살이 되면서 영어유치원으로 옮겼다. 딸아이는 친구와 같이 영어유치원에 가고 싶다고 졸랐다. 나는 영어유치원에 가면 하루 종일 영어만 한다는데 괜찮겠어? 라는 말로 딸아이를 단념(?) 시켰다. 영어유치원은 내 가치관에도 맞지 않고 무엇보다 경제적 형편도 맞지 않아 생각조차 안했는데 막상 아이가 영어유치원 가고 싶다고 노랠 부르니 썩 맘이 좋지 않았다. 영어유치원 다니는 아이의 단짝 친구는 사립 초등학교로 진학할 계획이다. 단짝 친구지만 이제 자연스럽게 멀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이야 어리니까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 아이가 커서 혹시라도 부모 탓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내 아이와 그 친구는 출발선이 다르다.

 

아이가 점점 커가다 보니 교육 문제로 관심이 옮겨간다. 나는 유아기 아이에게 무슨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잘 먹이고, 책 많이 읽어주고 그러면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다행히 딸아이는 건강히 잘 자라주고 있다. 한글도 자연스럽게 익혀 읽고 쓸 줄도 아니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의 친구들은 사고력, 수학, 영어, 피아노, 미술 등 서너군 데 학원을 다니거나 개인과외까지 받는 게 아닌가! (사고력 학원이 있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유아기 아이들은 미술이나 피아노 학원만 다니는 줄 알았다.) 딸아이가 알파벳을 구분 못할 때 옆집 아이는 영어 문장을 쓰고 읽는다. 겉으론 내색 안했지만 나도 뭔가를 시켜야 되는 걸까 잠시 흔들렸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엄마표 영어 어쩌구 하는 책도 찾아보고 유튜브에서 이런 저런 교육 이야기도 들었다. 정답을 찾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들이 학원을 선택하는지도 모르겠다.

 

능력주의와 불평등

 

내 아이는 좀 달랐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들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옆집 엄마들 때문에 사교육 시장이 커지고 유지되는 것일까?! 개천용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아이가 남들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았으면 하는 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교육의 기회를 보장하면 내 아이의 출발선은 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사교육 시장을 버티게 하는지도 모른다. 학원을 가야 친구를 만난다, 맞벌이 부모의 퇴근시간까지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들어왔지만 경쟁에서 뒤쳐질 수 없다는 게 더 큰 이유 아닐까 싶다. 부모의 경제적 · 사회적 문화적 배경은 곧 아이의 능력으로 이어진다. 금수저 부모를 만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차이를 넘어서 차별까지 경험하며 자란다. 불리한 조건을 가진 네가 잘못 아니냐며 불평등을 감수하라고 강요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며 개인의 노력만을 강요한다. 네가 노오력한 만큼 얻는 것이 곧 공정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러한가? 불평등은 곳곳에 자리한다. 경제력 있는 부모와 그렇지 않은 부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 (IN)서울대와 지잡대의 차이 등등. 출생이나 부, 재능에 따라 사회적 위계가 나타난다.

 

숨 막히는 이런 현실을 비판하는 책이 바로 <능력주의와 불평등>이다. 학교에서, 노동현장에서, 곳곳에서 나타나는 능력주의를 성찰해 더 나은 사회를 말한다. 열 명의 저자들은 한결같이 능력주의 시스템을 이대로 유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경고한다. “극소수 용에게 특권을 몰아주면서 용이 되지 못한 이들의 열패감과 억울함을 동력으로 삼는 체제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고 개천용이 되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구조적 해결을 도모하기 위해서 해법도 제시한다. 학교 현장의 능력주의를 고발한 초등교사는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노동과 생존을 분리시켜야 한다며 기본소득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의사집단의 엘리트주의를 고발한 저자들은 국민들의 건강권을 위해서는 의사들이 공공적 역할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능력주의 문제를 교육이나 청년세대, 노동시장 진입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젠더와 인종, 비장애 중심주의 문제, 노동의 가치와 위계의 문제로 이야기하고 국가와 시장, 기업은 이 구조에서 어떤 역할로 존재하는지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연대하자는 외침도 담겨있다. 사회에서의 평등이 일터에서의 평등을 만들고, 일터에서의 평등이 사회에서의 평등을 밀어나갈 힘이라는 것을 믿고 연대하자는 것이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모든 것을 다 차지하는 세상, “돈도 실력이야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세상, 출발선이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만 하는 이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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