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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수희씨와 책읽기(종료)

<109호> 이재학 PD를 추모하는 밤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6. 1.

 

지난 13일 청주지법은 이재학 PD가 청주방송의 노동자이며, 부당해고를 인정한다고 항소심 선고에서 밝혔다. 이재학 PD가 생전에 그토록 바라던 청주방송 노동자임을 확인받았다. 허망함, 안타까움말로는 다 채울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이 밀려왔다.

 

이재학 PD는 죽음으로 방송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처우를 세상에 알려냈다. 그러나 정작 언론들은 고인의 죽음을 외면했다. 처음엔 충북지역 대다수 언론들이 고인의 죽음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세상은 들끓었으나 지역사회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했다. 지역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의 죽음 앞에서도 지역 언론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방송사들이 카메라를 들고 기자회견장을 찾았으나 이재학 PD를 익명 처리하고, CJB 청주방송의 로고를 모자이크 처리하는 데 급급했다. 대책위의 활동이 가시화되면서 방송사들의 보도 태도에도 변화를 보였다. 그러나 끝까지 침묵하다가 막판에 합의했다는 사실만을 전하기도 했다. 최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표한 모니터보고서 <언론계 비정규직 문제 보도, 언론은 언제까지 외면할까>를 보면 이재학 PD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 승소 내용을 다룬 보도도 적다. 방송계의 비정규직 문제가 법원에서 다퉈진 유의미한 판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사들은 여전히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재학 PD의 사망사건으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지역방송의 현실적인 구조적 모순이 지역사회에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역방송사에 상당한 인력이 비정규직과 프리랜서들의 노동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CJB 청주방송은 방송에 필요한 필수 인력도 불법 도급 노동자를 썼으며, 프리랜서 작가들을 고용해 일반 직원들이 하는 일을 하게 했다. 고용노동부도 지난 청주방송을 근로감독한 결과, 프리랜서 작가·PD·MD 21명 중 12명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판단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이재학 PD의 죽음으로 처음으로 공식적인 확인을 한 셈이다.

 

노동 환경 만이 문제는 아니다. 지역민영방송에서 대주주의 영향력이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도 확인했다.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CJB 청주방송은 회장님 뜻 운운하며 여러 차례 입장을 바꾸며 유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합의 이후에 또다시 사망 책임을 부인하고 나섰고 항소심 판결에 이르기까지 CJB 청주방송이 보여준 태도는 믿을만하지 않았다. 이재학 PD 사망사건의 책임에 비판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CJB 청주방송의 대주주는 건재하다. 지역경제단체의 단체장까지 지내는 명예를 누리며, 지역 국립대학에서는 그에게 명예박사학위까지 줬다. 경영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는 이가 매달 천만 원이 넘는 고액의 임금을 청주방송에서 받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법원이 이재학 PD가 노동자가 맞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세상은 아직 그대로다. CJB 청주방송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약속한 합의사항을 충실히 이행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을 개선한다고 해도 갈 길이 멀다. 방송계의 비정규직 노동 문제는 CJB 청주방송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방송사가 비슷비슷한 구조로 유지되고 있다. 이재학 PD의 죽음을 계기로 모처럼 현실이 드러나고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방송계의 비정규직 노동과 무늬만 프리랜서 노동이 사라질지는 확실하지 않다. 정부도, 방송통신위원회도, 언론노조도, 민언련도 더 이야기를 해나가야 한다.

 

민언련 활동을 하면서 이제까지 보도된 내용을 중심으로 비판하는 활동을 주로 해왔다. 방송계가 가진 구조적인 모순을 지적하고 개선하는 일에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요즘 다시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제2의 이재학을 만들지 않기 위한 구체적인 요구는 또 뒷전으로 밀린 듯하다. 사람이 죽었다. 노동자임을 확인받기까지 너무나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이재학 PD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끔 만들어내야 할 책임이 남았다.

 

나는 이재학 PD가 죽음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날 그 새벽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자책에서 벗어나 떳떳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아직도 모든 것이 제자리인 듯싶어 마음이 안 좋다. 사람들이 내게 자꾸만 고생했다고 말하는데 염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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