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청주경실련 성희롱 사건 기록집 <우리가 배후다>가 세상에 나왔다. 사건 피해자들과 지지모임 활동을 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지난 시간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눈물이, 누군가의 한숨이,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이, 누군가의 패기가 고스란히 담긴 <우리가 배후다>를 가슴에 꾹꾹 눌러 담아가며 읽었다.
다행이다
경실련 성희롱 사건 피해자들은 내 곁에 가까이 있는 활동가들이다. 그들이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무 잘못 없는 활동가들이 자책할까봐 걱정했다. 선뜻 나서기도 어려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기에…. 안타까워만 하는 내 모습이 나도 싫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언어로 글을 썼다.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자신을 드러냈다. 용기도 냈다. 자신과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며 “공론화되지 못한 시민단체 내의 위계적 사건에 대해 좋은 선례를 남겨 이후 나와 같은 모험을 할 사람들을 위한 길을 닦아놓고 싶었다”고 말한다. 피해자들에 꿋꿋한 목소리를 들으니 내가 더 힘이 난다.
부끄럽다
“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진정한 사과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인데 단체의 책임자들은 이를 간과한다.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피해자를 아득바득 프로불편러, 요즘 것들, 극성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며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외면한다. 그렇게 생산된 2차 가해를 지적하면 이를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 가해자로 지적받은 사람들끼리 찰싹 붙어 자신들의 결속력을 끈끈히 한다. 대개 이런 일은 권력에 의하여 자행되기 때문에 약자인 피해자들은 조직 내에서 고립되고 결국 퇴사하는 방식으로 사건이 마무리 된다.”
피해자가 진단한 시민단체의 모습이다. 내가 시민단체에 몸담고 있어서 그런지 이런 지적들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지역 시민단체들이 역할을 하고 해결에 앞장설 것이라 믿었던” 이들에게 지역시민사회에서는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위계적이고 성차별적인 조직문화와 활동방식을 고수하는 시민단체가 설 자리는 이 사회에 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는 지지 모임의 이야기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시민단체가 변화를 꿈꾸지 못하니 청년 활동가들을 떠나가게 하는 게 아니냐, 활동가들의 노동과 지역 시민사회 운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점검해봐야 한다는 지적에도 공감했다. 사실 나도 <우리가 배후다>에 시민운동의 위기를 고민한 글을 썼다. 고민이 많다, 괴롭다는 말에 상응할 정도의 치열한 고민을 담아내진 못했다. 그래서 더 부끄러웠다.
우리가 배후다
충북청주경실련 성희롱 사건 피해자 지지 모임의 활동은 너무나 소중했다. 피해자들이 외롭지 않게, 함께 하는 이들도 자신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게 도왔다. 지지 모임에 연대했던 많은 여성들이 자신들이 당했던(?) 성차별과 성폭력 사례를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연대하지 못했던 과거의 어느 순간을 돌아보고, “무엇이 옳은지 생각하지 않는 것도 또 다른 2차 가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힌다. “힘 없고 겁 많은 이들도 서로를 만나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걸, 그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피해자 지지 모임이 “지역사회가 고수해오던 남성중심 문화, 그 오래된 폭주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잘못된 논리에 당당하게 맞서 “우리가 바꾸면 돼” 라고 말하는 배후세력이 있어 다행이다.
“피해자들이 겪고 느꼈던 것들과 피해자의 곁에서 함께 싸우면서 변화한 모습을 기록한” 책 <우리가 배후다>는 지지모임의 말대로 “이제 하나의 역사”가 될 것이다. 피해자들의 외침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담아냈기에 말이다. 연대의 힘을 멋지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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