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내게 직장을 그만두고 논다고 하면 나는 흔쾌히 “그래 당신 그동안 수고했어. 이제 쉬어도 좋아. 아니 이제부터 제대로 놀아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나는 아마도 지금 제정신이냐고 되묻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내 남편은 무척이나 성실하다.
얼마 전 남편이 재밌게 읽었다는 책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를 나도 따라서 읽었다. 남편이 브런치에서 알게 된 작가인데 글을 재밌게 쓴다고 추천해줘 호기심이 생겼다. 생활 에세이 글이야 다 거기서 거기인 듯 하지만 브런치나 페이스북에서 유명해져 책을 만들고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이 책의 작가 편성준은 20년차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다. 회사는 그만두었지만 일은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전문직이다. 그러니까 아주 대책이 없지는 않았겠지, 믿을만한 구석이 있어서 (그동안 벌어놓은 돈이 많던가 아니면 생활비를 벌 든든한 아내가 있던지!) 그러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책을 보니 정말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태로 놀기로 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더 이상 회사가 시키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자 했다. 안정된 월급으로 얽매이기 보다는 좀 가난한 편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 편성준은 너무나 허술한 사람 아니 무심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어려서부터 경쟁심이 부족하고 욕심이 없어 바보처럼 산다는 말을 들었다는 그는 술만 마시면 스마트폰을 택시에 두고 내리거나 장례식장을 잘못 찾아가거나 하는 식으로 일상이 실수담 그 자체로 책으로 묶어낼 정도로 많다고 털어놓는다. 다행히 그에겐 꽤나 현명하고 담대한 아내 혜자 씨가 있다. 출판 기획 일을 한다는 혜자 씨는 작가의 놀겠다는 선언을 아무렇지 않게 허락한다. 오히려 결심하느라 애썼네 라고 말해준다. 이제까지 열정적으로 연애 한번 하지 못했다는 그를 온전히 받아주는 여자를 만난 것이다. 작가는 책에서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라고, 자신은 아내에게 모든 걸 말한다고 말이다.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얼마나 창피한지 …아무리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해도 다 받아주는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 자신을 부자로 만든다고 고백한다.
두 부부가 노는 방법은 바로 글쓰기이다. 그의 직업은 카피라이터, 쓰는 사람이다. 술을 마시면 술과 관련한 글쓰기를 하고 영화를 보면 영화 칼럼을 쓰고,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 그 이야기를 또 쓰고 그러면서 살아간다. 아내와 함께 오래된 한옥을 사서 고치는 과정도 글로 써내면서 행복을 짓고 있다. 부부가 함께 여행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을 취재해 글로 써내는 일도 한다. 일이 아니라 놀이로. 그들이 사는 집 이름이 성북동 소행성이다. 작지만 행복한 집이란 뜻을 가진 소행성, 쉬지 않고 노는 삶을 지향하는 부부의 뜻을 담았나보다.
부부가 놀고 있다는 말은 이제 부부가 함께 꿈꾸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소소한 재미로 온전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테니 걱정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가 좀 팔렸으니 당분간은 더더욱 돈 걱정은 안할지도 모르겠다.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부부 모습을 아니 내 남편을 생각했다. 우리 부부는 여러 면에서 좋아하는 것이 비슷하고 대화도 대체로 잘 통하는 편이지만 여러모로 다르기도 하다. 게으른 나는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는 편이지만 남편은 워낙 부지런해 다양한 취미생활과 이런 저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빡빡한 직장생활로 얼굴에 피곤이 역력한데도 멈추질 않는다. 나는 걱정인데 남편은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인생에 계획이란 걸 세우지 않았고 경제관념도 대체로 없는 편이어서 청약이니 주식이니 아예 관심조차 없으니 남편에겐 답답한 아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해주고, 더 큰 그림을 그려보라고, 꾸준히 공부하라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군소리 없이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다. 남편 덕분에 내가 잘 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행이다.
'소식지 > 수희씨와 책읽기(종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6호> 노나메기 세상을 위해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0) | 2021.02.23 |
---|---|
<105호> 세상에 지지 않고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는 법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회원) (0) | 2021.01.27 |
<103호> 시민운동의 위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회원) (0) | 2021.01.06 |
<제 101호> ‘공정’을 외치면서 ‘불평등’은 외면하는 대통령에게 권함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회원) (0) | 2020.09.28 |
<100호> 진실을 밝힌다는 건…! 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1) | 2020.09.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