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청주경실련 성희롱 사태 이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경실련은 서울 경실련을 중앙 경실련이라 부르고 지역 경실련은 지부로 돼 있다. 지역 경실련에 문제가 생기면 사고지부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중앙경실련이 갖는단다. 회원들의 결정이 아니라 중앙의 결정이다. (민언련도 네트워크 조직이지만 운영은 독립체제이다. 서울에서 지역에 뭐라 할 권한이 없다.) 중앙경실련은 충북·청주경실련을 사고지부로 결정했고, 활동가들에게 해고통보를 했다. 그것도 카톡으로 말이다. 성희롱 피해자들에게 직장 폐쇄도 모자라 카톡 해고 통보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지난주엔 인권연대 숨과 함께 충북민언련도 공동 입장을 내고 사고 지부 결정과 피해자들에 대한 처분에 분노했다. 충북청주경실련과 같은 공간을 쓰며 연대해왔기에 우리 두 단체도 경실련 사태에 하고픈 말이 많았다. 공동입장을 발표했더니 SNS에 충북·청주경실련 집행위원장이기도 하고 2차 가해자의 당사자이기도 한 이가 댓글을 달았다. “단 한번이라도 피해진정인들의 주장이 실체적 진실과 다른 점은 없는지 확인했냐”고 물으면서 충북민언련을 비난했다. 이미 “명백한 성희롱이다. 2차 가해가 맞다.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사과문을 버젓이 내놓고도 말이다. (주요 가해자가 피해자를 계속해서 ‘피해진정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한지 어느덧 17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겪다보니 자연스레 내가 무엇을 한 것일까 돌아본다. 절망스런 마음과 함께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시민사회단체의 바람직한 조직문화는 무엇일까? 2030 세대에게 시민사회단체는 어떻게 보일까? 시민들은 관심이나 있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바꾸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에 묵직하게 남는 돌덩이 같은 질문들이 계속 떠오른다.
경실련 사태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는 내게 하승우 박사가 최근 펴낸 <신분피라미드 사회>는 좀 더 체계적으로 고민할 거리를 던진다. 하승우 박사는 한국사회를 신분피라미드 사회라고 규정하면서 능력주의가 신분피라미드를 포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분피라미드 사회를 붕괴시켜야 할 시민사회마저도 능력주의에 포획돼 시민들과 멀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승우 박사는 책에서 시민운동의 중앙집중현상, 명망가 중심의 운동, 거버넌스를 절대 선인 양 내세우면서도 주민들의 뜻을 살피지 못하는 현실, 정부나 기업의 지원 탓에 권력 감시라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 본래의 활동보다는 모금에만 집중하는 모습, 운동에 전망을 세우는 게 아니라 정계 진출로 전망을 가져가는 활동가들 등등 그동안 시민사회단체에 존재하는 모든 비판을 아우르며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나는 시민사회단체 조직문화에 대한 진단에 공감했다.
하승우 박사는 시민운동 초기부터 전문가나 능력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운동을 주도해왔고 이런 능력주의가 위계로 변화하기 쉽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승우 박사는 시민운동이 위기에 처해있으면서도 방향전환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수의 능력 있는 대표나 사무처장들이 이끄는 시민단체의 내부구조 때문이라며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조직 내부에서 활동과 실무의 분리 문제와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 문제를 파생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활동보다는 실무에 더 치중하고 있다. 그런데 실무에 맞는 시스템도 별도로 갖추지 않고 있으며 문제의식조차 없다고 비판한다. 운동을 하는 활동가가 아니라 각종 프로젝트 사업 실무처리를 해야 하는 실무자 수준에 머무르고 임원들이나 회원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 운동에 대한 전망은 먼 이야기처럼 여겨지는 것이리라. 시민사회단체의 내부 구조가 의사소통이나 의사결정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점은 뼈아픈 지적이다. 가장 민주적이고 진보적일 것만 같은데 말이다. 시민단체의 비민주성은 특히나 청년 활동가들을 지치게 만든다. 하승우 박사의 말대로 청년활동가들에게 기획할 수 있는 권한도 주지 않고 열정페이만 강요하는 식이라면 누가 이 바닥에서 운동을 하겠다고 버틸 수 있겠는가! 최근 경실련 사태를 겪으면서 몇몇 20~30 대에게 “이제 누가 시민단체에서 일하려고 하겠어요. 시민사회단체는 경로당 아닌가요?!” 하는 이야길 들었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라서 반박하지 않았다.
시민운동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시민단체가 중요하다고 말하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시민운동이 그동안 자신을 성찰하고 혁신하는 과정을 밟아왔냐는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할까. 하승우 박사는 시민단체의 조직문화와 활동방식을 바꿔야 한다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시민운동이 의존해온 전문성과 능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데 어떻게 가능할까? 당사자들이 직접 나설 수 있도록 다양한 경로는 만들게 한다면 정말 달라질까? 시민들 속에서 지지를 받으며 시민들과 함께 연대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시민단체에 몸담고 있어서 관성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다. 시민운동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 지금까지 잘못해온 것은 혁신하고 또 혁신해야 한다. 혁신을 바탕으로 리부트하지 못하면 이제 설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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