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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수희씨와 책읽기(종료)

<112호>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한 이유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활동가)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8. 30.

 

지난 주말 어머니와 동생들과 너무나 오랜만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어머니 생신을 맞아 코로나 핑계를 대며 어머니와 세자매 이렇게 넷이서만 떠났다. 모처럼 남편과 아이들에게 벗어난 우리들은 마냥 즐거웠다. 어머니는 왜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냐고 걱정하셨지만 나는 처음부터 데려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하루라도 엄마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올여름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전혀 보내지 못해 내겐 이번 여행이 더 특별했다. 몇 년 만에 여자들끼리 떠난 여행이라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들을 하느라 바빴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와 마찬가지로 동생들도 사는 게 바빠 자기만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 하는 듯싶다. 나야 아이가 어려서 더욱 그렇지만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도 시간이 없기는 매한가지. 엄마의 역할은 끝이 없다. 끊임없는 돌봄 노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집구석이 돌아가니까!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채 삼십분도 되지 않는다. 여성은 언제나 방해를 받는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여성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가 필요하다는 강렬한 조언을 해 준 버지니아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엄마가 되어 다시 읽으니 더 절절하다. <자기만의 방>에서는 여성들이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여성들이 글로 자신의 삶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한 주장이다.

 

 

 

자기만의 방이 내게 있는가, 라는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다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라는 책을 우연히 읽었다. 이 책도 자기만의 방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여자에게 자기만의 방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나의 고유함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욕망이라고. 여자에게 집은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담하는 공간이며 독립과 자유의 실현을 억압하거나 최소한 보류하게 만드는 장소라고 말한다. 공감한다. 작가는 여자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곳은 집이 아니라 방이라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여자는 자기만의 방에서 끊임없이 읽고 쓴다고 썼다.

 

하재영 작가는 버지니아울프 보다 메리 올리버의 말 창작은 고독을 요한다는 말에 고독은 장소를 요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나를 부르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 장소, 영감의 순간에 이를 때까지 침잠하고 몰입할 수 있는 장소, 바로 자기만의 방이다. “아무리 사소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권하고 싶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시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 바란다.”는 버지니아 울프처럼 작가도 부추긴다. 나에 대해 말할 사람은 나뿐이지 않냐고, 존재하는 한 이야기 해야 한다고, 내가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타인이 내리는 정의를 거부할 수 있다고, 글을 쓸 때 내 자리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나는 여태껏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가 있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새삼 자기만의 방에 대한 고민이 늘어간다. 요즘 나는 늘 바쁘고 버겁다. 빈둥거릴 시간이 없다. 왔다갔다만 하는 것 같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 같아 한심스러울 때도 많다. 그래서였을까? 오랜만에 엄마와 동생들을 만나서 힘이 났다. 우리가 일상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들이 자기만의 방에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이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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