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학교에 갑니다. 인권의 눈으로 바라본 국공립대학교의 풍경은 어떨까요?
'교육'은 기본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모두가 평등한 교육의 권리를 누리지 못합니다. 배리어 프리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고 교내 장애인지원센터와 인권센터가 운영되고 있는 충북대학교. 국공립대학으로서 배제와 차별 없이 모든 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있는지, 더 나아가 학생과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는지 직접 쏘댕겨봅니다.
이번 도시쏘댕기기는 준비단계부터 충북대신문 기자들과 함께해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인권연대 숨 사무실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823번 저상버스를 탑승해 충북대정문에 하차합니다. 충북대학교 신문 배시혜기자와 함께 출발합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저상버스에 수동 슬로프(휠체어 진입경사로)였습니다. 청주 시내 저상버스 대부분은 슬로프가 자동으로 설치되어 있는데 참 반가웠습니다. '인권연대 숨과 함께하는 저상버스타고 쏘댕기기 1탄 카드뉴스'에 수동슬로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요. '전동슬로프'는 언뜻 보기에 효율적일 것 같지만, 실제 휠체어 이용자입장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장비 설치 비용은 많이 들면서 잔고장도 많고 조작이 익숙하지 않은 기사님들은 사용을 어려워해 휠체어 이용객도 불편한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하지만 수동 슬로프는 전동 리프트보다 경사로도 완만하고 탑승이 쉬웠습니다.
휠체어 탑승시 탑승보조 서비스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의해 의무화되어있지만 자동 슬로프의 경우, 승무원이 운전석에서 슬로프를 조작해야 하므로 조작 후 별도의 탑승보조서비스를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수동슬로프의 경우 슬로프 작동을 위해 승무원이 탑승위치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탑승보조를 지원받을 수 있어 더 안정적으로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17조(교통이용편의서비스의 제공) ① 교통사업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교통약자 등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교통수단, 여객시설 또는 이동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정보 등 교통이용에 관한 정보와 한국수어ㆍ통역 서비스, 탑승보조 서비스 등 교통이용과 관련된 편의(이하 "교통이용편의서비스"라 한다)를 제공하여야 한다. <개정 2016.2.3, 2019.4.23>
청주시 교통과에 문의해본 결과 기존 저상버스를 수동으로 변경하진 않으며, 저상버스 슬로프를 자동 또는 수동으로 설치해야 하는 법적 근거는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답변했습니다. 수동 슬로프와 같이 '저상버스 접근성'에 중요한 요인들은 생산자의 기준이 아닌 이용자의 기준에 맞춰 제도적인 보장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https://sumofhuman.co.kr/545?category=949693
충북대학교 정문에 하차하여 오늘 충북대 쏘댕기기를 함께 진행할 충북대 학생들을 모두 만났습니다. 충북대신문은 2년전 「캠퍼스 내 숨은 '장벽'을 찾아서」라는 기사를 통해 대학 캠퍼스 내 장벽, 편의시설 현황등을 모니터링하기도 했습니다. 대학 구간별로 경사로, 승강기, 점자안내, 장애인화장실등을 꼼꼼히 모니터링 했는데요. 당시 장애인편의시설이 가장 갖춰지지 않았던 농생대(농업생명환경대학)부터 최근 새롭게 확장한 도서관, 모든학생들이 이용해야 하는 대학본부, 학생회관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정문에서 농생대로 가는 길목에 있는 횡단보도에 점자안내까지 잘 설치되어있었지만 횡단보도를 건넌 후 반대편 보행로의 턱이 제거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옆쪽으로 보행로 턱이 제거된 횡단보도가 있긴 하지만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점자대로 기존의 횡단보도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편 턱에 임시경사로라도 설치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접근권, 이동권은 단순히 비용의 문제일까?
농생대 입구에는 경사로와 점자 안내판 자동문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들어가기 위해 학생증을 찍어야 하는 기기의 위치가 높고, 찍고 난 후에 자동문을 이용하다 문이 닫히기도 합니다.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좀 더 섬세한 설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농생대 내부로 들어가 봅니다. 내부의 한 강의실은 경사로가 설치되지 않아 휠체어가 진입할 수 없었는데요. 계단의 폭이 좁지 않기 때문에 큰 비용을 들여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하지 않아도 기존의 형태에서 경사로를 설치할 수 있는 방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노후화 된 건물이지만 시각장애인 점자 스티커를 부착해 안내표시를 해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스티커 형태이기 때문에 부착상태를 수시로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고 종종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기 어려운 위치에 점자 스티커가 붙어있기도 했습니다. 장애인 화장실은 넓은 공간이 확보되어 있지만, 창고처럼 활용되고 있어 꾸준한 관리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농생대 건물에서 대학본부로 이동하기 위해 다른 출입구를 이용하려고 보니 이용에 제약이 많았습니다. 어떤 이유에선지 경사로가 설치된 입구에 자물쇠가 잠겨져 있고 경사로 입구에 화분이 놓여있기도 하고, 다른 진입로의 경사로는 너무 가팔라 휠체어가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짐을 옮기기 위한 용도로 설치된 경사로인 듯합니다.
농생대를 나와 대학본부 인근에 2020년 4월 조성되었다는 <함께 걷는 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짧은 구간이었지만 과거에는 울퉁불퉁한 돌길이라 비장애인 학생들도 이용에 불편함이 컸던 공간을 모든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선했다는 점은 인상 깊었습니다.
청주시의회 도시건설위원회에서 활동하고 계신 박완희 시의원이 충북대쏘댕기기에 합류해주셨습니다. 대학 내 시설문제에 함께 관심 가지고 개선해나가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음은 충북대학교 중앙도서관으로 넘어갑니다. 중앙도서관은 구관(본관)과 신관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구관에는 책을 대여할 수 있는 열람실, 자료실이 있었는데요. 전체적인 공간은 넓지만, 책을 보러 들어가는 공간이 휠체어가 들어가기는 비좁았습니다.
구관의 출입에는 별도의 제약이 없었으나 구관에서 신관으로 넘어가는 구간에는 카드를 찍고 게이트가 열려야만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출입구 센서의 속도가 휠체어 이용에는 너무 빨라서 휠체어가 문 사이에 끼기도 했습니다.
신관은 도서 검색기의 높이가 휠체어 사용에도 무리가 없는 정도로 낮게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수동으로 조작해야 하지만 높낮이가 조절되는 책상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신관은 구관보다 이용하기 쉬운 시설이었지만 전반적으로 도서관 내부를 장애인 학생 혼자 이용하는 것은 사실 어려워 보였습니다. 시설설비뿐 아니라 센서속도, 출입문 사이의 거리와 같이 별거 아닐 수 있는 요소들이 장애학생 기준에서 변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캠퍼스 내 카페에서 휴식과 함께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소 불편함과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공간을 인권의 눈으로 바라보다 보면 생각지 못한 것들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학교에 문제를 제기해도 제대로 변화되기보다는 교직원 또는 주변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현실이 답답해요.
특히 이번 코로나19 기간은 비장애인 학생들도 '코로나 학번'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일상의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요. 갑자기 수업들이 대면으로 전환되면서 교육의 질이 급격히 떨어져도 제대로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더 소외되었다고 하는데요. <개신누리 블랙보드> 사이트는 수강신청, 학적조회, 등록금납부, 비대면 수업 수강 및 수업자료 열람 등 학교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하는 통합사이트이지만, 음성지원서비스와 연동이 안 되어 있어 실제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사용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학교측에 문제를 제기해도 제대로 개선되지 않았고 지금도 개선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해도 교직원 개인의 선의에 기대어 일시적인 조치 정도 밖에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내 화장실이 비장애인이 사용하기에도 좁은 화장실이 장애인화장실이거나, 장애인 화장실의 문이 닫히지 않는 등 관리의 문제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교내는 나은 편이죠. 학교 인근의 식당, 원룸촌 등은 장애학생들이 아예 이용할 수 없는 공간이에요.
얼마전에 애브리타임이라는 커뮤니티에 충북대 중문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있는지 문의글을 남겼었는데요. 아무곳도 없는 거에요. 그나마 추천해준 곳은 아주 고가의 레스토랑이었어요.
그나마 대학 내 공간은 상대적으로 시설이 많이 갖춰졌지만, 대학 인근의 원룸촌을 보면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방을 구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건이 열악하다고 합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공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니 변화할 가능성도 보이지 않아서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른 모습을 상상해보고 싶어요.
소수지만 긍정적인 변화들을 발견하면 반가워요. 성공회대에서 올해 '모두의 화장실' 을 준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장애유무, 성별등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해요. 꼭 장애인 전용, 사실 이런 딱지도 필요없죠.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은 2021년 성공회대 학생기구의 의결을 통해 추진되었으며 성별 정체성과 장애 유무에 제약받지 않고 음성지원, 자동문, 점자블록, 각도거울, 유아용 변기커버와 기저귀 교환대, 소형세면대, 접이식 의자등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학생기구의 의결 이후에도 학교측의 유보적인 태도에 학생들이 다양한 홍보활동과 토론회, 1인시위를 이어가 준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22.3.16 연합뉴스 발췌, 성동회대, '모두의 화장실' 설치.. 국내 대학 중 최초>
그리고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대학 축제나 이런 것도 우리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누리곤 하지만 대구대에서 축제를 할 때 무대에 자막을 설치하고 수어통역사가 함께 모든 공연에 참여해 수어로 노래를 전한다고 들었어요. 최근 1,2년의 일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축제 때 워낙 인파가 쏟아지니까 안전사고로 부터 안전한 공간을 확보해둔다거나 축제준비위원회에서 베리어 프리존을 만든다거나 이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억압과 차별, 사라진 것일까? 변화되는 것일까?
저는 건축 관련 학과에 다니는데 수업 중에 3D로 자신이 직접 건물을 만들어보는 수업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계단을 어떤 소재로 하고, 건물을 어떻게 꾸미고 이런 고민과 논의만 헀지 그 많은 학생 중에 엘레베이터를 어떻게 설치하고, 경사로를 만들고 이런 고민과 논의를 해본적은 없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좀 충격적이에요.
사회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겉으론 없어 보여도 일상 곳곳에 존재하는 억압과 차별이 존재해요. 억압과 차별의 형태가 변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사실 얼마나 일상에서 의식하는냐가 중요해졌어요.
더운 날이지만 충북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충북대를 직접 돌아다니며 다양한 고민을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은 교내 구성원들의 인권을 보호·증진하기 위해 설치된 인권센터, 장애지원센터를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2편에서 함께 하세요!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s://thesumofthings.tistory.com/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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