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에서 배워라. - 해나 개즈비
재헌
해나 개즈비의 나네트는 참 어색하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이제까지 내가 소비하던 코미디를 돌아보게 했다. 바보같던 슬립스틱, 외모를 평가하던 사람들, 그리고 여성이나 소수자들을 비하하던 멘트들. 예전엔 가볍게 웃어 넘겼던 장면들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불편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해나 개즈비의 이야기는 스탠드업 코미디도 인스턴트 웃음이 아니라 가치있는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내면의 트라우마와 성찰을 소재로 썼다. 기존의 코메디처럼 자기 비하에 멈추거나 편집된 이야기로 공허한 웃음을 전달하지 않고 소수자로서 격은 차별과 상처를 직접 말로서 전달했다. 사회가 숨겨왔던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성을 웃음과 눈물로 고발하고 다양성을 호소했다. 이런 퍼포먼스를 해낸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나네트가 스탠드업 코미디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이야기가 가진 가치와 의미에 장르는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그는 멋진 코미디언이다. 나네트의 명성이 나네트라는 작품이 지니는 본래의 재미와 가치를 넘어버렸기에 극을 멈출 때가 왔다고 했다. 앞으로 자신과 사회 이면을 성찰하면서 그가 펼칠 다음 공연을 기대해 본다.
“이제 해로운 농담은 끝내야 한다”
은규
자서전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 인생도 벅찬데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시간 낭비이며 감정 소모적이라 여겨서다. 그렇다. 웬만하면 안 읽으려 한다. 내 주변에 쌓여있는 책을 남김없이 다 읽어버리고 중독 증상에 못이겨 할 수 없이 읽어야 한다면 모를까. 이제껏 읽은 자서전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체 게바라 평전, 김대중 자서전, 니코스 카잔차키스 자서전 그리고 또 아! 카스트로 평전 정도... (그러고보니 유명인을 좋아하는 취향)
차이에서 배워라/ 해나개즈비의 코미디 여정.
이 책은 정말 우연하게 발견했다. 평소에 독서 취향대로라면 무조건 패싱할 책이다. 클리셰 풀풀나는 책 제목이 그렇고 ‘해나 개즈비?’ 이런 코미디언이 있었어? 짐짓 외국 코미디언의 성공담이려니 여기고 슥 지나치려다 다음의 홍보 카피에 낚이고 말았다.(호기심이 많다는 장점이려니 여기고)
“이제 해로운 농담은 끝내야 한다”
어라? 코미디는 극강의 농담이 난무하는 장르인데 해로운 농담을 끝내야 한다니? 자기 밥줄을 끊자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서 드라마 ‘더 글로리’가 떠올랐다. ‘넝담’이라고 말한 그 느끼한 선생놈!) 사실 대한민국에서는 해로운 농담들이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고 그게 돈이 되고 심지어 유명세에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압도적인 말빨에 휘말렸던 거다. 글을 읽었는데 말빨이라니. 이건 글빨이 아니라 말빨로 쓴 글이다. 어느 하나 가공하지 않은 순정한 말빨의 글이라니. 심지어 해나 개즈비의 코미디 작품 ‘나네뜨’까지 보고 말았다.
테즈메이니아의 혐오와 차별의 굴레를 뚫고(공기마저 혐오와 차별의 냄새를 풍기는 느낌적 느낌) 마침내 바로 그 혐오와 차별을 향해 강력한 펀치라인을 멕이는 해나 개즈비가 진정 멋있게 다가왔다. 우리나라에도 해로운 농담을 하지 않으며 차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펀치라인을 멕이는 코미디언이 있기를 바란다.
정치인들은 교육에 투자하는 대신 증오에 투자하고 있으며 취약한 소수자의 생명은, 유독한 논쟁의 인기로 권력을 얻어 행복해하는 언론(정치, 종교)생태계 다수의 손에 달려 있어선 안된다는 해나 개즈비의 진심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 공감하는 바 크다. 나는 해나 개즈비의 팬이 되어 버렸다.
“나는 관객들이 군중심리에 넘어가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길 바랐다.”(자신감 어쩔!)
바로 이럴 때 우리 사회에 쓰레기처럼 넘쳐나는 ‘해로운 농담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좁아져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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