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헌
가녀장의 시대.
뭔가 웅장하고 격렬한 페미니즘 전사의 소설이 아닐까 상상했었다.
나의 착각이었다.
소설 아닌 자전적 가족소설 같은 이야기는 초반에는 내 가슴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어리둥절한 분위기 속 인물들의 대화가 이어 졌다.
‘이제 갈등이 나올때가 됐는데? 언제 나오지?’
결국 소설은 큰 갈등 없이 소소한 성찰을 하며 각자에 대한 이해와 애정으로 마무리 된다. 책장을 덮고 내 가슴은 미지근함보다 좀 더 따뜻한 훈기로 채워졌다.
소설 속 조금 특이한 가족 혹은 회사의 모습. 가부장이 해체된 사회에서 우린 얼마나 다채로운 색깔의 관계를 마주하게 될까. 설렘으로 다기온다.
이구원
처음 책 제목을 보고는 흥미로우면서도 읽기 망설여졌다. 제목만 봤을 때는 나를 뒤흔들 불편함을 명치 깊숙이 밀어 넣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페미니즘의 필요성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연대해야 함을 지금은 알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물론 내 삶의 가치 중 일부와 페미니즘의 가치가 충돌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내가 갖고 있던 편견과 좋지 않은 관습들이 페미니즘이란 거울에 비춰지고 죄책감과 불편함이 늘어나는 것이 싫어서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까칠하게 느껴지는 제목과 표지에 조금은 두려움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처음 내 예상과 달리 굉장히 편안한 느낌이었으며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와 관계 속에서 몽글몽글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강렬하게 인상적이지는 않았지만 부드러운 안도감 속에 책을 다 읽었다. 생생한 일상의 이야기로 느껴졌기에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으며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조금은 놀라웠다. 가부장의 시대를 넘어선 사회로 조금씩 더 나아가길 바래본다.
배상철
“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모처럼 코드가 잘 맞는 책을 본 듯하다.
굳이 평을 하자면 심플하면서도 심오함이 있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이 갖는 첫 번째 매력 포인트는 밀당이다.
할아버지와 은밀한 밀당을 즐기며 그 속에서 할말은 다하는 밀당. 할아버지로부터 독립해 가녀장이 된 후 경험하게 되는 사회적 시선과의 밀당.
이 소설이 갖는 두 번째 매력 포인트는 거리낌없는 당당함이다.
이를테면 『남의 찌찌에 상관 마』 같은 경우이다.
이 소설이 갖는 세 번째 매력 포인트는 솔직 담백함이다. 실수를 실수로 담담하게 표현한다. 레즈비언 커플 등 다른 사람에게 상처도 준다. 그리고 나선 실수를 바로잡고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 소설이 갖는 네 번째 매력 포인트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공평한 객관적 기준의 제시이다. 모부를 고용하면서도 모의 부엌일에 대해서도 급여를 책정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이 소설을 통해 노동의 가치는, 평등의 가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맞이하는 평범한 삶에서 시작됨을 되새기게 된다.
이은규
가자 슬아와 함께 가녀장의 시대로!
소설의 시작은 유쾌하고 발칙했다.
“권위를 잘 믿는 이들은 쉽게 속는 자들이기도 하다. 웬만해선 속지 않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속지 않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방황하게 된다. 세계를 송두리째로 이상하게 여기고 만다. 어린 슬아는 선택해야 했다. 속을까 말까.” 슬아는 속기로 아니, 속아주기로 했다. 아직 가녀장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는 눈물이 맺히기도…(갱년기라 욕하지마. 감성있는 아저씨야)
”존자는 좋아하는 드라마를 시청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들었다. 딸이 들려 준 글은 딸의 딸이 쓴 문장이었다. 존자 혼자서 푸념처럼 늘어놓던 과거가 삼대를 거쳐 슬아의 버전으로 되돌아왔다. 그것은 존자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슬아의 기억과 복희, 영희, 윤희, 병찬의 기억이 뒤섞인 편집본이었다. 존자는 이야기의 주인이 여럿임을 알게 되었다. 존자의 삶은 존자만의 이야기일 수 없었다.
자신에 관한 긴 글을 듣자 오랜 서러움이 조금은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슬아의 해설과 함께 어떤 시간이 보기 좋게 떠나갔다. 이야기가 된다는 건 멀어지는 것이구나. 존자는 앉은 채로 어렴 풋이 깨달았다. 실바람 같은 자유가 존자의 가슴에 깃들었다. 멀어져야만 얻게 되는 자유였다. 고정된 기억들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존자에 관한 여러 개의 진실이 시골집 거실에 차곡차곡 놓였다. 마당에서는 배추들이 절여지는 중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동시에 꿈꿨다. 소설 속 가녀장 슬아가 대한민국의 막돼먹은 대통령을 대신했으면 좋겠다는 꿈, 노동부 장관을 대신했으면 좋겠다는 꿈, 교육부를 비롯해 모든 공무를 실행하는 꿈. 그러면서 또 꿈 꿨다. 가녀장 공화국에서 아름다운 아저씨로 늙어가고 싶다는 꿈. 꿈꾸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으니 실컷 꿈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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