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불완전한 / 일라이 클레어
은규 일꾼
일라이 클레어는 장애 있는 생명들, ‘몸-마음’을 단순하게 정의했다. “눈부시게 불완전한 많은 존재들 중 하나인 채로, 모든 게 이토록 복잡하고 단순할 수 있을까?”라고.
비장애 중심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백인 남성중심주의 등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면 일라이 클레어의 통찰에 수긍할 것이다. 그러나 눈부시지만 불완전한 몸-마음들은 제 눈에 낀 비늘을 벗겨 낼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외려 그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으스대고 추앙하고 있는 세상이다. 장애인과 유색인, 낯선 타자를 비인간화하며 혐오와 차별 그리고 격리와 멸종의 넘쳐나는 사례들을 이 책에서 접할 수 있다.
장애인에게 치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의료 행위는 세계를 비장애 중심주의와 의료산업 복합체의 이윤 추구의 시장으로 만들어 왔다고 비판한다. 비장애 동일성에 대한 강박으로 행해지는 의료행위는 그 자체로 폭력이다.
자선단체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랫동안 자선단체들은 장애는 비극적인 것이고 장애인은 불쌍하다는 관념을 형성해왔고 이를 통해 돈벌이를 해왔다고 비판한다. 정작 장애인들에게는 최저임금도 채 주지 않는 일자리를 주면서 말이다.
“장애는 마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사로 없는 계단에, 시각장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점자와 오디오북의 부재에, 난독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직된 교육방식에 있었다.”
일라이 클레어는 불가능한 꿈을 상상한다. 그래서 그는 리얼리스트이다.
“만일 비만 혐오, 비장애 중심주의,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계급 차별주의, 동성애 혐오, 트랜스 혐오, 외국인 혐오가, 다양한 몸-마음 위에 위치하는 모든 딱딱한 제약들이 해체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욕망할까? 이 질문은 나를 압도한다. 불가능한 종류의 상상을 요구한다. 그러니 내가 분명히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싶다.
괴롭힘, 빤히 쳐다보는 시선, 끝없이 이어지는 노골적인 질문들 또 없을 것이다. 극복의 미덕을 홍보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재단과, 기금 모금을 위해 연민과 비극을 활용하는 근육병협회도 없을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도, 기업식 농업의 옥수수밭도, 마실 수 없는 물과 숨 쉴 수 없는 공기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몸-마음의 차이가 존중받고 그 중 어느 것도 박멸되지 않는 세계를 스치듯 본다. 평안과 고통, 안녕, 탄생, 죽음이 모두 존재하는 그런 세계를. 치유는 우리에게 실로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결코 정의를 주지는 않으리라. 이 다시 설정된 세계에서, 치유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한대도 많은 도구들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이 세계에서 우리 몸-마음의 욕망은, 한 여름의 톨그래스 대초원처럼 활기차고 다채로이 우리 사이로 퍼져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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