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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일꾼의 탐독생활

린 틸먼 - 어머니를 돌보다

by 인권연대 숨 2024. 4. 15.
어머니를 돌보다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 - 린 틸먼 지음 

 

 이은규

 

당신에게 도움이 되거나 정보를 제공하거나 위로를 건네거나 당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이야기 책 앞머리에서 린 틸먼은 친절하게(?) 이 책에 실린 내용을 안내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나에게 이 책은 도움이 되었고 정보를 제공해주었고 위로를 건넸고 마침내는 마음을 불편하게도 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은 린 틸먼 탓이 아니다. 가까운 미래에 나에게도 닥쳐올 상황이 떠오르면서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어머니가 있고 적극적으로 늙어가고 있는 아내가 있고 내가 있기 때문이다.

 

린 틸먼은 자신의 두 자매와 함께 11년간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어머니를 돌봤다. 정확하게는 현대의학 체계가, 돌봄체계가 그리고 그 체계 안에 움직이는 각각의 전문가들과 불법이주민(책에 기술된 그대로 옮김) 여성들과 무엇보다 여유로운 친자매들과 어머니의 노후자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린 틸먼은 서슴없이 말한다. “나는 좋은 딸 역할을 연기했지만 거기에는 내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고 대신 내 양심은 담겨 있었다.”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는 주변의 권고에 린 틸먼은 좋은 딸이 되어야 한다는, 좋은 동생이 되어야 한다는 내면의 압력과 외부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토로한다. 어머니를 위해 순정하게 택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어머니를 살리는 일에 주저함은 없었지만, 맹목적으로 희생하며 이타적으로 그 일을 수행하지는 않았고, 그것은 가혹한 의무이기도 했다고.

 

이 책 어머니를 돌보다 적극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노인들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작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지독하고 지겹고 지루한 노인 돌봄 실상을 세세하게 들추어내고 있다. 먼저 가족들의 정서적이며 물질적인 고통, 무엇보다 자신의 자유로움이 구속되고 심지어 고갈되어 가고 있다는 솔직한 심정과 어머니와의 서늘한 관계에 대한 고백부터 시작해서 현대 노인정신의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돌봄 노동자들에 대한 시시각각 변화하는 감정까지 확장되어 간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닥쳐올 자신의 노년에 대한 사회구조적 안전망을 미리 경험한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말년의 과정을 말이다.

 

다행히 린 틸먼에게는 적극적으로 돌봄을 함께 하는 친자매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봄 자체에는 지난한 어려움들이 산적해 있다.

부모와 형제자매 사이에서 형성된 경험적, 심리적 관계는 암묵적이고 무의식적인 법칙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역사가 개인의 태도와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결과 돌봄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의 의욕을 꺾고 힘을 뺀다. 그동안 쌓인 감정들이 해석과 결정 속에 맴돈다. 지형은 험난하고, 이전 전쟁에서 남은 폭탄이 깊은 감정의 밀도에 의해 기폭된다. 가족 또는 친구들은 환자라는 대의를 위해 협력할 것이다. 아니면 분열하다 분해될 것이다. 많은 경우 그렇게 된다. 우리 자매들은, 우리 딸들은 서로를 놓지 않았고, 우리의 목표는 어머니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최대한 건강하게, 이 세상에 살아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81)

 

따지고 보면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적극적으로 죽어가고 있다.’ 순정한 이타성은 사실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인간은 신화와 종교를 발명해낸 것이 아닐까?

후회 없는 삶은 없다. 깔끔하고 존엄한 채 적극적으로 죽어가는 삶도 없다. 그러니 자기 정신으로 살아 있는 지금, 여기에서 자신을 둘러싼 관계를 성찰해 볼 일이다. 그리고 타인에게(자식도 타인이다) 조금이라도 이타적인 돌봄을 받기 위해서는 공동체와 사회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란 자원을 공정하고 평등하게 배분하는 일이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돌봄 정치가 주제가 되기를 바란다. 공동체가 책임지는 평등한 돌봄 사회에서만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의무에서 오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으며 온전한 사랑으로 죽음을 환송할 수 있을테니까. 돌봄에 지쳐 가족살해와 자살로 이어지는 상황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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