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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일꾼의 탐독생활

“Oh, I'm feeling good”

by 인권연대 숨 2024. 7. 23.
“Oh, I'm feeling good” - 영화 ‘퍼펙트 데이즈’
이은규

 

참 좋아하는 시가 있다. 기회가 날 때마다 사람들에게 소개하고는 한다. 좋은 것은 알리고 나누어야 하므로. 인권교육을 할 때면 교안에 단골로 올리는 시이기도 하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실습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중에서)

 

여기 한 중노년의 남자가 있다. (나이 육십은 넘었고 칠십은 이르지 못한 이를 중년이라고도 노년이라고도 지칭할 수 없어 중노년이라 표현함) 히라야마라 불리는 그는 화장실 청소노동자다. 그는 열심히 자신의 노동을 한다. 화장실 청소의 마스터, 장인이다. 시내 여러 곳의 화장실을 돌며 온 마음을 다해 청소한다. 그리고 각각의 장소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인물과 상황들을 관조한다. 열려있되 개입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과 같다. 영원할 것 같지만 기실 찰나에 불과한 순간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그저 지켜보는 그의 단단한 태도에는 어떠한 서사가 있을까?

 

히라야마의 단조로운 그러나 단단한 일상에도 가끔은 크고 작은 균열이 생기고는 한다. ‘뜻하지 않게동료의 데이트에 엑스트라로 끌려다니거나 가출을 결행한 조카의 방문으로 뜻하지 않게여동생을 만나게 되거나 동료의 갑작스러운 퇴직으로 뜻하지 않게야근을 하게 되거나 하면서 말이다.

뜻하지 않은상황을 마주하는 히라야마의 태도는 다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뜻하지 않음에 대해 그는 열려있다. 받아들이고 기꺼이 함께한다. 이러니저러니 의견을 내거나 훈계를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본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야근과 초과노동을 하게 된 상황에 대해서는 참지 않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화를 내는 장면이다. “이렇게는 더 일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의 새로운 동료가 왔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태도와 조직과의 관계에 태도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히라야마. 어쩌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장면이다. 매번 그의 표정이 참 좋다. 마치 하늘을 오늘, 이 아침에 처음 보는 표정이라니. 그의 일상은 그래서 뻔하고 지루한 일상이 아니라 지금’, 늘 새롭고 빛나는 지금들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의 일상이 이리도 단단했을까? 잠깐 등장한 여동생과의 대화와 그녀를 대하는 태도에서 몹시 흔들리고 상처 입었던 히라야마의 과거 삶을 짐작해볼 뿐이다. 타인의 시선과 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공포와 불안의 시간을 보내고 견뎠을까?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마지막 장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장면 하나로 나는 그가 어떤 서사를 가진 사람인지 더 궁금하지 않게 되었다. 희로애락이 깃든 삶을 오롯이 천변만화하는 표정으로 담아내는 장면에 깊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그래 삶은 그런 거지.” 오십 대 후반의 내 얼굴에 한 번쯤은 찾아왔을 표정이 그의 얼굴에 담겨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이 영화는 중노년의 아재들을 위한 영화임이 분명하다.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히라야마의 표정이야말로 코모레비이다. (코모레비는 나무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이라는 뜻의 일본어. 순간적으로 포착되는 아름다움을 뜻하면서 이 순간이 단 한 번만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늘도 히라야마는 비질 소리에 깨어 분재 화분에 물을 주고 자판기 캔커피를 뽑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출근을 하고 정성스레 노동하고 신사에서 코모레비를 올림퍼스 카메라로 찍으며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을 것이며 퇴근 후 동네 목욕탕을 갈 것이며 지하상가 식당에서 하이볼을 마실 것이며 문고판 책을 읽다가 잠들 것이다.

 

히라야마의 하루는 반복되는 하루가 아니다. 그의 하루와 그가 즐기는 코모레비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와 겹쳐지는 이유이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실습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It's a new dawn, it's a new day, it's a new life for me

Oh, I'm feeling good (Feeling Good 중에서)

퍼펙트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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