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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일꾼의 탐독생활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돌아보라’

by 인권연대 숨 2024. 6. 20.
존 어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2023) – 감독 : 조너선 글레이저

                                                                                                                                                                    

어둠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영화가 시작되었다. 한 장면을 오래도록(1? 2? 정도였는데) 보여주며. 장면은 그냥 흑백, 캄캄한 암막이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한 기계음 같기도 하고 수많은 비명이나 아우성이 눈사태처럼 쏟아져 내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불길하고 불안한 상황.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어둠이 걷히고 소리가 잦아들고는 평화로운 한 가족의 강변 소풍을 영화는 보여준다.

 

“한 번에 500명씩, 하루 종일.”

여기 다섯 남매를 둔 부부가 있다. 남편의 생일날, 가족은 출근하는 그에게 서프라이즈 선물로 작은 나무배를 선물한다. 가족들은 화사하게 웃고 떠든다. 한바탕 유희가 끝난 후 남편은 출근한다. 각잡힌 군복을 입고 말 위에 걸터앉아 정원을 가로질러 담장 너머로. 이 남자의 직장과 관사는 담장 하나 사이로 있다. 그날 오후 남편은 손님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소각실 두 개가 서로 마주 보는 구조인데 한쪽의 온도가 대략 1000도까지 치솟을 때 다른 한 쪽은 40도 정도로 떨어집니다. 하나가 타는 동안 다른 하나는 식으니까 소각로를 쉴 새 없이 돌리는 게 가능합니다. 태우고 식히고 비우고 채우고. 그걸 반복하는 겁니다. 한 번에 500명씩, 하루 종일.” 손님들과 남편은 신제품의 성능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다.

 

어느 가정의 평범한 일상을 지탱하는 것들

그들 가족에게는 그들의 일상을 물샐 틈 없이 완벽하게 채워주는 조력자들이 있다. 유모가 있고 가정부가 있고 세탁부가 있고 그리고 정원을 가꾸고 피묻은 장화구두를 닦아주는 사람도 있다. 가끔 아내는 푸대에 넣어져 들어온 헌 옷들을 조력자들에게 던져주고는 한다. 그러나 이 부부는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 모든 사람을 하찮게 여긴다.

남편에게 말하면 너 따위 재로 만들 수 있어

자신의 어머니가 이른 아침에 집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무엇인가 들켰다는 심정이었을까. 시중드는 가정부에게 내밷은 말이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생명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그 폭력과 잔학성이 이들의 일상을 지탱하고 있음을 단박에 알아차리게 한다.

존 어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2023)

 

“난 죽어도 여기 못 떠나. 그동안 꿈꿔왔던 삶이잖아.”

영화 존 어브 인터레스트2차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으로 있었던 회스와 그의 가족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는 남편에게 아내가 말한다. “난 죽어도 여기 못 떠나. 그동안 꿈꿔왔던 삶이잖아.” 그들의 안락한 현실은 한번에 500명씩 하루종일 살해당하는 수용소의 끔찍함 위에 세워져 있다.

매일 같이 굴뚝에선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고함과 비명과 총소리가 기계음들과 뒤섞여 들려온다. 강물에는 수용소에서 소각한 사체들의 유기물질들이 흘러나오고... 공기라고 달랐을까? 처음 방문한 아내의 어머니는 연신 기침을 해댔고 하룻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는 이곳을 떠나버렸다.

 

사과를 심는 소녀

영화에서 흑백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수용소 인근에 거주하는 소녀가 외부 강제노역에 동원되는 유대인들을 위해 곳곳에 사과를 심어둔다. 독일군이 곡괭이를 들 일은 없을테니 작업장 곳곳에 심어둔 사과는 유대인들을 위한 양식이리라. 모두가 눈감고 귀막고 코를 막아도 사과를 심는 소녀는 존 어브 인터레스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하고 알았을 것이다. 소녀가 사과를 심는 까닭이다.

 

지금 팔레스타인에서는

이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은 감독 조너선 글레이저는 수상소감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언급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현재의 우리와 마주하고 성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 지켜보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피해자성만 기억하며 강조하는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양심있는 전세계인들에게 나치에 버금가는 가해자로 기억되고 있다. 유대인들은 나치에게 배운 것이 인류애에 반하는 절멸 정책, 홀로코스트인가? 영화 존 어브 인터레스트가 현재 팔레스타인 가자와 라파로 다가오는 이유이다.(최근에 나온 유엔난민기구 UNHCR 보고서 <Global Trends Report2023>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난민은 600만이다)

 

일꾼 이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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