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시쏘댕기기/2024년 도시쏘댕기기

나무는 사람이 죽인다 - 우암산 둘레길 나무 잔혹사

by 인권연대 숨 2024. 4. 18.
나무는 사람이 죽인다.
우암산 둘레길 나무 잔혹사
이재헌 (국제수목관리학회 공인 수목관리전문가, 나무 의사)

 

가로수 건강은 그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보여준다. 나무는 모두가 공유하는 거리에서 제일 소외되고 발언권이 없는 존재다. 말 없는 나무에 얼마만큼의 공간을 내어 주는지, 그리고 그 삶(수목생리)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통해 한 사회의 인권 수준과 생태 감수성을 이해할 수 있다. 수목 관리 선진국은 길을 조성할 때 보행약자뿐만 아니라 미래 나무의 건강을 예측하고 돌보는 작업을 계획한다. 나무 건강을 위해 어린 묘목을 심으며 가로 세로 2미터의 공간을 내어 준다. 가지치기를 할 때도 한 번에 25% 이상 자르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경제 선진국이라는 말이 민망하게 인권 감수성과 수목 관리 모두 후진국이다.

 

인권연대 숨 회원들과 우암산 둘레길을 걸으며 그곳에 살고 있는 나무의 건강과 여건을 살펴봤다. 100억을 지출하며 '화려하게 조성한' 우암산 둘레길은 나무에 대한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우암산 둘레길이 조성되기 전부터 그 길의 나무는 단단하게 다져진 보행로에서 뿌리를 충분히 펼치지 못하고 건강이 좋지 못했다. 상당수 나무줄기에는 큰 상처를 입고 부후(균류로 인한 목재의 썩음)가 진행되었고 수관(나뭇잎이 달린 상단)에는 죽은 가지가 적지 않게 달려 있었다. 여기에 100억 원을 들여 땅을 파서 뿌리를 잘라내고 덱(Deck)을 깔았다. 작거나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관목과 더 어린 나무들은 대부분 제거됐다. 남겨진 키 큰 나무들은 병든 채 공장에서 만들어진 나무판 덱 사이로 딱 자기 몸통만큼의 공간만 허락받았다. 안타까운 것은 나무의 뿌리 손상이나 토양 공사의 피해는 수년이 지나야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암산 둘레길은 보행자에게도 안전하지 못하다. 이날 함께한 회원 중 한 분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둘레길을 이동했다. 그는 수시로 나타난 가파른 경사와 높은 보행로 경계석 때문에 다른 회원이 밀어주거나 보조하여야만 나아갈 수 있었다. 보행약자는 편히 이용할 수 없는 길이다. 그 옆에는 거대한 잣나무와 참나무들이 듬성듬성 죽어 있었다. 나무껍질은 메말라 떨어지고 곰팡이는 이미 나무 구석구석을 썩게 하고 있었다. 굵고 죽은 가지들이 부러져서 매달린 채 보행자 머리 위에서 흔들리는 경우도 있었다. 강풍이 불거나 눈이 많이 쌓이는 날, 방치된 위험들이 보행자나 차량을 덮치는 뉴스를 지겹도록 봤다. 정작 길을 조성하며 위험한 고사목과 죽은 가지는 방치한 것이다.

 

아직 우암산 둘레길을 걷기 좋은 작은 숲으로 만들 수 있다. 어렵지 않다. 나무뿌리에게 충분한 공간을 주고 단단히 다져진 흙을 뿌리가 숨 쉴 수 있도록 회복해 주면 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굵은 가지를 자르지 않는 것이다. 보행로를 넓게 조성하면 나무가 건강해지고 모든 보행자도 행복할 수 있다. 거기에는 100억이라는 엄청난 세금이 쓰일 필요도 없다.

 

우리 사회는 나무 한 그루 건강하게 돌볼 수 있는 정치가 부재하다. 수목 관리 법률과 조례는 형식적이고 현장 매뉴얼과 전문가 양성 교육 내용은 시대에 한 참 뒤처져 있다. 수목 생리를 우선하는 수목 관리 전문가는 찾기 힘들다. 대다수 시민들은 길 위에서 미래 나무보다 현재 편의를 택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주변의 살아 있는 존재를 돌보지 않는다면 기후 위기는 위기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길은 멀지 않다. 바로 우리 동네 거리의 나무 한 그루를 건강하게 돌보는 공존에서 시작한다. 모두가 존중받는 인권 도시가 기후 위기의 해법이다.

 

죽어서 썩어가고 있는 나무.

    

부러진 가지가 걸려 있다. 보행자 머리 위로 떨어지면 어찌될까 아찔하다.

 

균류에 의해 썩어가고 있는 나무. 살아있어도 살아 있는게 아니다.

 

무분별한 가지치기에 의해 썩어가는 나무
이렇게 해놓고 살기를 바라는가?
2023년 12월 8일 완공한 둘레길 데크. 4개월만에 하자 발생.

 

상처입지 않은 나무가 없다...

 

수년 뒤 우암산 둘레길 벚꽃은 사라질지도. 진정한 벚꽃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꽃의 화사함만 보지 말고 나무의 삶을 보존하기를

 

나무 의사 이재헌

* 사진 : 유호찬 . 이은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