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는 법
복효근
꽃이 지고 나면 그뿐인 시절이 있었다
꽃이 시들면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던 시절
나는 그렇게 무례했다
모란이 지고 나서 꽃 진 자리를 보다가 알았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다섯 개의 씨앗이
솟아오르더니 왕관 모양이 되었다
화중왕이라는 말은
꽃잎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란꽃은 그렇게 지고 난 다음까지가 꽃이었다
백합이 지고 나서 보았다
나팔 모양의 꽃잎이 지고 수술도 말라 떨어지고
나서 암술 하나가 길게 뻗어 달려있다
꽃가루가 씨방에 도달할 때까지 암술 혼자서
긴 긴 날을 매달려 꽃의 생을 살고 있었다
꽃은 그러니까 진 다음까지 꽃이다
꽃은 모양과 빛깔과 향기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랑이 그러하지 않다면
어찌 사람과 사랑을 꽃이라 하랴
생도 사랑도 지고 난 다음까지가 꽃이다
- 고요한 저녁이 왔다(역락,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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