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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없는 힘이어야 채식주의자를 가득 껴안을 수 있겠다.

by 인권연대 숨 2024. 11. 24.
『채식주의자』한강 著, 창비 刊, 2017

 

관조, 무망한 해탈 - 이은규

 

채식주의자를 읽고 며칠을 기다렸다. 물방울이 한방울 한방울 똑똑 떨어져 작은 종지를 채울 때까지 기다리는 심정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정리가 되겠지 했지만 떠오르는 건 온통 질문들이었다.

 

꿈일까? 현실일까?

꿈이라면 괜찮은 걸까?

꿈에서 깨면 그다음엔 그냥 살던 대로 살게 될까?

 

영혜는 꿈에서 사는 걸까?

뱃속에서 올라온 얼굴을 마주하는 꿈이라니...

하필 왜 뱃속에서 얼굴이 올라올까?

숨이 살아있는 것들과 숨이 죽어버린 것들을 먹고 씹고 삼켜버려 그 모든 것들이 켜켜이 뒤엉켜 퇴적되어 있을 뱃속에서

 

영혜는 영혜가 아닌 다른 생명일까?

영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 영혜의 언니는 어쩌면 영혜일까?

남편, 형부, 언니 그리고 가족은 뱃속에서 올라오는 얼굴들일까?

 

왜 영혜의 이야기는 없을까?

남편과 형부와 언니 인혜의 이야기 속에서만 영혜의 이야기는 전해질까?

어쩌면 이 모든 게 영혜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이야기가 아닐까?

 

질문들 사이 사이를 투과한 몇 방울의 물방울이 간신히 내 배 속을 채웠다. 몹시 쓰리고 거북하게

 

모든 게 꿈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는다. 인습과 풍습과 관습이 가진 폭력성을 뱃속 밑바닥까지 긁고 긁어서 그러모은다. 아주 낯익은 얼굴, 처음 보는 낯선 얼굴. 피투성이이며 썩어 문드러진 시체들이 자신의 뱃속 얼굴들이라고 영혜는 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혜의 말은 이렇다. “이제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하지 않을 거예요.”

인습이라는 것이 풍습이라는 것이 관습이라는 것이 그놈의 습관이라는 것들이 문화와 권력으로 문명으로 포장한 폭력이며 살처분이며 마침내는 살인이며 식인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한 이 장면에서야 나는 영혜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무가 되려는 아니 이미 나무인 영혜를 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영혜처럼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책 말미, 새로 쓴 작가의 말에서 한강은 말한다. “나에게는 이 소설을 껴안을 힘이 있다. 여전히 생생한 고통과 질문으로 가득 찬 이 책을.”

힘이 없는 힘이어야 채식주의자를 가득 껴안을 수 있겠다.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불꽃은 연결되어 있다. 따로 떼어놓고 볼 수가 없다. 몽고반점이 없다면 채식주의자는 결코 나무 불꽃으로 진화하지 못할뻔했다.

나는 겨우 이 책을 관조할 수 있을 뿐 해탈은 무망하다.

 

 

’위로하고 싶다‘ -  이구원

 

난 이 책을 2번 읽었다. 몇 년 전 처음 읽었을 때는 그저 기괴하고 기이했다. 작가의 다른 저서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와는 달리 선명한 주제 의식과 책을 읽고 나서 밀려오는 감정들을 느끼기 어려웠다. 다만 제목처럼 채식자체가 중심 주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 다시 책을 읽고 나서는 복잡하고 묘한 느낌이 든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난 이 책이 여전히 어렵다. 내용이 어렵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남성중심주의 가부장제 사회, 조금 더 근본적으로 인간사회의 강제적 억압과 폭력들을 날카롭고 선명하게 보여준다. 영혜의 채식과 여타 행동들은 그 폭력에 대한 자각이나 저항처럼 보인다. 2부에는 주요 인물들의 욕망과 갈망이 뒤엉키다 좌절한다. 마지막 장인 3부까지 읽었을 때 삶의 고단함과 피로감, 그 허무함과 쓸쓸함이 책 너머까지 전해지는 것 같다.

특별히 어떤 희망이나 공감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어쩌면 현실에도 조금은 다른 형태로 존재할 것 같은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들을 위로하고 싶다.

 

채식주의자 - 한강

영혜의 세계를 찾아서 - 배상철

 

꿈을 꿨어......”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 영혜가 채식주의자로서의 삶,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인간이 아닌 나무의 삶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때문이다.

빌어먹을..... 도대체 어떤 꿈을 꾸었길래?

영혜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갈망하는 꿈은 폭력이다. 남편과 형부와의 관계에서는 성폭력이고, 강제적인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는 가정폭력이다. 그보다 영혜를 정신병자로 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사회적 폭력이다.

 

- 채식주의자 -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 - 72p -

세상을 짓누르는 모든 폭력으로 벗어나기 위한 영혜의 첫 번째 선택은 채식주의이다. 채식주의로 인해 갈등과 고통은 심해지고 병원으로 표현되는 폭력에 대한 압박은 더 심해진다.

 

얼핏 든 잠에 꿈을 꾸었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고 있었다. 칼을 배에 꽂아 힘껏 가른 뒤...그러나 내가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는 잠에서 깨어난 순간 잊고 말았다” -73p-

나 또한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수많은 누군가 중 한 사람임을 생각한다.

 

- 몽고반점 -

채식주의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점차 야위었던 몸이 회복된 영혜의 두 번째 저항의 방법은 자기 몸을 물감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꿈을 꾸지 않아요. 나중에 지워지더라도 다시 그려주면 좋겠어요” - 142p -

영혜의 몸에 남아 있는 몽고반점은 순수함에 대한 영감을 넘어 형부의 욕망을 자극한다. 예술적 욕망과 도덕적 죄의식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처제와의 육체적 관계에 대한 형부의 욕망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낸 채 불우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 나무 불꽃 -

영혜의 마지막 선택은 나무가 되는 것이다.

언니,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210p -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모두 모두 다 물구나무 서있어까르륵 영혜가 웃었다. 그제야 영혜의 표정이 어린시절의 어느 순간과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16p-

조용히 그녀는 숨을 들이 마신다. 활활 타오르는 도로변의 나무들을, 초록빛의 불꽃들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아니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그녀의 눈길을 어둡고 끈질기다. -268p-

 

......어쩌면 꿈인지 몰라.

하지만 꿈이 아니다. 폭력도 저항도 엄연한 현실이다.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는 것이 만난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2024.11.23 펠프미

영혜언니에게 - 나순결

 

채식주의자 중 세번째 <나무 불꽃>

 

그 누구두 영혜으 단식 존엄사를 막을 권리는 없다. 내 또헌 그리헐 것. 의사가 표명헌 그날 한달전에 <생 중 장례식 큰잔치>를 가까웠던 이들을 초대혀서 치룰 것.

영혜에게 한마디. 잘 허구 있어유, 당신 결단, 용기 끝나지 않는 힘성과 렬렬헌 박수루다가지지 응원허는구먼유. 단 한나.

약자였을 때야 어쩔 수 없지만, 권력을 갖게 된 후루는 인정사정 봐주지 말어유. 그거이 누구든지유! 무촌간이건 1촌간이건 사둔에 필춘에 당숙이건 간에유. 영혜, 당신만을 위혀서 존재허는 시상이여라. 안쓰러워서 안타까워서 잘 대혀주면 지가 증말 최곤지 알구 기어오르는 거이 인간이니께유.

 

채식주의자 중 두번째 <몽고반점>

 

협의를 혔다면 그 어떤 행위를 허건 무슨 상관이랴. 그런데... 협의상대자가 심신미약 상태라면? 후견인과 혔어야 됨. 그렇지 않다면 그 협의는 원천무효다. 혀서 비주얼예술가가 행헌 일은 성착취구 성폭력일 뿐. 예술은 무신. 개뿔이구 중뿔 난거구 자기기만일 뿐.

영혜언니에게 한마디만 더. 가족회식자리에서 벌어진 부친으 폭력. 그에 조응혀서 과도를 들어올린 영혜언니!!! 그 과도으 날은 언니 손목이 아니라 그 지경에서두 입 꼭 다물구 침묵으루 일관혔던 당신 언니, 그 배우자, 당신 동생, 그 배우자, 당신 엄마으 큰정맥 혹은 큰동맥이 흐르는 곳으루 향혔어야 혀유.

베트남전에 참전혔던 당신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게 허는 걸루 충분혀유.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게 분명허니께유. 애써 외면혀 왔던, 자신으루 인혀서 죽음에 내몰린 강간에 내몰린 비엣남인민들이 한나한나 눈 앞에 소환되며 삽시간에유.

 

채식주의자 중 첫번째 <채식주의자>

 

별 헐말이 없네. '먹는 행위'에 대헌 내 행동층위를 말혀야겄다.

내는 페스코베지테리언이다. 내는 허파호흡을 허는 동물으 사체는 먹지 않는다. 내 돈 내서 내 자의루는 먹지 않는다. 헌디

초대된 자리라 치자. 메인메뉴가 오로지 육꾀기 뿐이라면. 가타부타 말없이 맛나게 먹구 웃구 떠든다. 아쉬움은 껄끄러움은 항상 남았구. 혀서!!!

원젠가버텀은 초대를 받았을 때 꼭 이리 말혀왔다.

"근디 내는 육꾀기 안먹거든유. 육꾀기 외에두 메인 메뉴가 있는 식당으루 정혀주시면 즐거운 맴으루다가 초대에 응헐께유. 생각혀 보시구 식당 정혀지면 연락주서유.

연락이 없더라두 한나뚜 안서운혀 헐꺼니께 맴 무겁게 유지허지 마시구유."

요정도루다가 이런저런 상황에 처해지구 이런저런 이들과 벗허구 있다.

진종일 문자와 문자 사이에서, 그 사이 의미를 쫒다보이 허기짐 마이 느낀다. 이해성타로이스트가 또랑가식당에서 쭈꾸미덮밥을 먹자헌다.

커라쇼! 빠치무 넷!

'이러니 저러니 혀두 너내우리는 무언가를 입에 집어 넣는 행위를 통혀서 가장 적은 고통을 현상계에 끼치며 너내우리으 삶을 영위허는 존재다.'

채식주의자는 그런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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