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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현경이랑 세상읽기

아무 노력 말아요

by 인권연대 숨 2024. 12. 26.
아무 노력 말아요
박현경 (화가, 교사)

 

아무 노력 말아요

버거울 땐 언제든

나의 이름을 잊어요

꽃잎이 번지면

당신께도 새로운 봄이 오겠죠

시간이 걸려도

그대 반드시 행복해지세요

눈사람가사 (아이유 작사, 제휘 작곡, 정승환 노래)

 

나에게 올해의 노래는 눈사람이다. 가사가 좋아 듣고 또 들었다.

 

아무 노력 말아요.”

 

나에게 가장 힘이 된 문장이다. 호랑이 기운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가 현실의 벽에 세게 부딪혀 한동안 날개가 꺾여 있었던 내게 정말 힘이 된 말은 잘할 수 있어.”잘될 거야.”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세요.”였다.

 

7, 음성지회장으로서 음성교육지원청의 단체협약 위반에 대응할 때였다. 몹시 지쳐 있었지만 어떻게든 이 상황을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힘들어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하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지회 집행부 선생님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럼 제가 이러이러한 걸 더 알아보고 이러이러한 일을 더 해 볼까요, 라고 묻자 그분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단호한 태도로, “아뇨, 지회장님은 아무것도 더 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세요.”라고 말했다. 이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눈물이 날 뻔했다.

 

그런 나였기에 우연히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아무 노력 말아요.’라는 문장이 마음에 탁 와 닿았고, 이 문장을 자주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점수, 등수 따져 가며 문제풀이 연습하고, 꽃다운 청소년기에는 서열 높은 대학 가는 것 따위를 인생 목표로 삼아 밤늦게까지 고생하고, 어른이 돼선 먹고 살기 위해 끝없이 노오력해야 하는 이 사회에서, 공부 말고 다른 길을 택한 사람들도 인생 나락 안 가려면노력 노력 노오력할 것을 무한 요구받는 이 세상에서, 나는 나의 사랑하는 중학생 친구들에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말해 주고 싶다.

 

아무 노력 말아요.”

최선을 다하지 말아요.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아요. 다만,

 

시간이 걸려도 그대 반드시 행복해지세요.”

 

불행한 사람을 지켜보는 건 슬픈 일이다. 나 자신도 한때 불행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할 것 같고, 모든 걸 다 망친 것 같고, 더 이상 그 무엇에 대해서도 의욕이 생기지 않고, 끝없는 잠 속으로 사라지고 싶고, 죽고 싶고……. 디테일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마음인지 어느 정도는 겪어 보았기에, 불행한 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몹시 아프다. 당신도 그런 심정이겠구나. 당신도 그렇게 깜깜하겠구나.

 

불행한 학생들이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 교사로서 체감하는 현실이다. 팔에 쓱쓱 그어진 뻘건 칼자국을 볼 때, 물어뜯고 또 물어뜯어 너덜너덜해진 열 손가락 끝을 볼 때, 언젠가 나도 지었을 지쳐 빠진 표정을 볼 때, 가슴이 아프다. 섣불리 조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독이 될 때가 많다는 걸 알기에. 동정도 없다. 내가 더 나은 인간이라는 확신이 없기에. 다만, 대수롭지 않은 듯한 말로, 웃음으로, 눈빛으로 이렇게 얘기할 뿐.

 

아무 노력 말아요.”

 

이 문장들이 그대에게 가 닿을지 안 닿을지 알 수 없지만, ,

 

시간이 걸려도 그대 반드시 행복해지세요.”

그림_박현경, 천사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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