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상수리나무 그늘에 앉아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에 고마워하며,
이 숲에 옮겨 심은 줄기 굵은,
오십 살은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가
소생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설경을 품은 영화 한 장면에 위로받고,
투명한 커피 컵에 얼린 얼음을
내 어머니가 하셨듯이
긴 바늘과 나무 밀대로 톡톡 깨어
아이 입에 넣어주기도,
진하게 탄 블랙커피에 동동 띄워
얼음과 컵과 숟가락이 부딪는
시원한 소리 들으며,
엄마 미숫가루 타 줘 소리에
와 고소하겠다~ 하며,
한낮 더운 바람 나오는
선풍기에도 고마워하며
이 여름을 건너고 있어요.
지나가면 곱게 접혀질 제 이야기의
한 부분이, 다른 해와는 다소
다르고 힘들기도 했던 한 때가 지나갑니다.
한 밤엔 서늘하여
온통 열어놓았던 커다란 유리문과
창문을 닫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엔 이 황톳 집도 열기로 뜨거워져
아이들과 이리저리 차로 옮겨 다니다
열기가 빠져나갔을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였어요.
나무 그늘 아래서,
커다란 다라이에 물 받아놓고 부러,
빠지기도 하고, 막대기를 하나 하나
뽑아 어느 순간 물이 쏟아지는,
장난감 모자를 쓰고, 마음 졸이다
온통 물세례를 받으며
아이들과 깔깔거리기도 하며
마음까지 식히곤 했습니다.
방바닥에 등대고 누워
책 한 권 펼쳐들고,
그 한 권 다 읽을 때까지 식사도 준비 않고
독서하기도 하였네요.
좀 서늘해진 밤엔.
세상일을 읽다가 애 닳기도 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진실과 밖으로 내놓은 현실이 달라 괴로워하던 누군가의 죽음을 맞닥뜨리고는,
사람이란 존재가 무엇일까,
진실의 무게는 나에게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에 좀 슬프고,
무거워져 며칠 우울하기도 하고,
한 사람의 한 사람에 대한 폭력,
그 재판과정을 지켜보며 분노하기도 하고,
여성은 어디쯤에 서있을까,
오랜 지배체제 안에서 길들여진,
그래서 그것이 자신의 것인냥 살아가는
사람의 사고나 마음이 폭력을 폭력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구나,
그 지혜를 어디서 찾을까,
새롭지 않은 새로운 시각이 어떻게 눈 뜰 수 있을까,
혹은 폭력과 비폭력 그사이에서 서성이는 저를 보기도 하였어요.
월, 화, 수, 목요일에는 누군가 세상일을
이야기에 빗대어, 혹은 날카롭게 이야기해주는 3분여의 낮은 음성에 위로를 받기도,
공감을 하기도 하였지요.
그렇게 뜨겁다 뜨겁다 하는 계절을 걸어왔어요.
그 과정에서 제 몸에서 흐르는 땀을 보았습니다.
일터에서도 적정실내온도라는 26, 27도에 에어컨 온도를 맞추어놓고,
아이들과 뛰놀다보면 아이 이마에,
제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그 땀.
땀을 흘리지 않으려는 제 마음도 보았고요.
땀.
흐르는 땀을 닦거나 시원한 물 샤워 한 번이면 그만이었습니다.
땡볕아래 상추를 한 잎, 한 잎 거두지도 않고, 비라도 온다하면 온종일 서서 김장배추도 심지 않은,
저의 시간이 지나갔네요.
누군가는 고추나무 그늘에 앉아 숨이 턱턱 막혀와도, 고추를 따셨을 테지요.
그것을 그이의 억척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는 없는 일...,
그 누군가의 애씀으로,
또 다른 누군가들은 김장을 담글 수 있을 터이니까요.
만난 적 없는 하얀 북극곰의 안부가 궁금하고
그의 안전이 걱정되는 시절이 지나간 자리.
다시 누군가에게 기댈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늘이 저리도 높은 걸 보면.
새벽이 서늘한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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