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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76호> 지나간... 지나온...,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15.

커다란 상수리나무 그늘에 앉아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에 고마워하며,

이 숲에 옮겨 심은 줄기 굵은,

오십 살은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가

소생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설경을 품은 영화 한 장면에 위로받고,

투명한 커피 컵에 얼린 얼음을

내 어머니가 하셨듯이

긴 바늘과 나무 밀대로 톡톡 깨어

아이 입에 넣어주기도,

진하게 탄 블랙커피에 동동 띄워

얼음과 컵과 숟가락이 부딪는

시원한 소리 들으며,

엄마 미숫가루 타 줘 소리에

와 고소하겠다~ 하며,

한낮 더운 바람 나오는

선풍기에도 고마워하며

이 여름을 건너고 있어요.

지나가면 곱게 접혀질 제 이야기의

한 부분이, 다른 해와는 다소

다르고 힘들기도 했던 한 때가 지나갑니다.

한 밤엔 서늘하여

온통 열어놓았던 커다란 유리문과

창문을 닫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엔 이 황톳 집도 열기로 뜨거워져

아이들과 이리저리 차로 옮겨 다니다

열기가 빠져나갔을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였어요.

나무 그늘 아래서,

커다란 다라이에 물 받아놓고 부러,

빠지기도 하고, 막대기를 하나 하나

뽑아 어느 순간 물이 쏟아지는,

장난감 모자를 쓰고, 마음 졸이다

온통 물세례를 받으며

아이들과 깔깔거리기도 하며

마음까지 식히곤 했습니다.

방바닥에 등대고 누워

책 한 권 펼쳐들고,

그 한 권 다 읽을 때까지 식사도 준비 않고

독서하기도 하였네요.

좀 서늘해진 밤엔.

세상일을 읽다가 애 닳기도 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진실과 밖으로 내놓은 현실이 달라 괴로워하던 누군가의 죽음을 맞닥뜨리고는,

사람이란 존재가 무엇일까,

진실의 무게는 나에게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에 좀 슬프고,

무거워져 며칠 우울하기도 하고,

한 사람의 한 사람에 대한 폭력,

그 재판과정을 지켜보며 분노하기도 하고,

여성은 어디쯤에 서있을까,

오랜 지배체제 안에서 길들여진,

그래서 그것이 자신의 것인냥 살아가는

사람의 사고나 마음이 폭력을 폭력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구나,

그 지혜를 어디서 찾을까,

새롭지 않은 새로운 시각이 어떻게 눈 뜰 수 있을까,

혹은 폭력과 비폭력 그사이에서 서성이는 저를 보기도 하였어요.

, , , 목요일에는 누군가 세상일을

이야기에 빗대어, 혹은 날카롭게 이야기해주는 3분여의 낮은 음성에 위로를 받기도,

공감을 하기도 하였지요.

그렇게 뜨겁다 뜨겁다 하는 계절을 걸어왔어요.

그 과정에서 제 몸에서 흐르는 땀을 보았습니다.

일터에서도 적정실내온도라는 26, 27도에 에어컨 온도를 맞추어놓고,

아이들과 뛰놀다보면 아이 이마에,

제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그 땀.

땀을 흘리지 않으려는 제 마음도 보았고요.

.

흐르는 땀을 닦거나 시원한 물 샤워 한 번이면 그만이었습니다.

땡볕아래 상추를 한 잎, 한 잎 거두지도 않고, 비라도 온다하면 온종일 서서 김장배추도 심지 않은,

저의 시간이 지나갔네요.

누군가는 고추나무 그늘에 앉아 숨이 턱턱 막혀와도, 고추를 따셨을 테지요.

그것을 그이의 억척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는 없는 일...,

그 누군가의 애씀으로,

또 다른 누군가들은 김장을 담글 수 있을 터이니까요.

만난 적 없는 하얀 북극곰의 안부가 궁금하고

그의 안전이 걱정되는 시절이 지나간 자리.

다시 누군가에게 기댈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늘이 저리도 높은 걸 보면.

새벽이 서늘한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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