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나무도...,
벚나무도...
화살나무도...,
다시, 단풍 든다.
아, 가을.
덥다고,
비가 많다고 말하던
어제는 지나가고,
아침과 밤 서늘함에,
거실 한 켠에 우리와
따뜻한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갈,
난로가 들어온, 오늘이, 왔다.
난로는, 4월에 나갔다,
10월에 들어왔으니,
일 년의 반절은 난로에게
기대어 사는 격이다.
난로 안에서 소멸하며 따스함을 뿜어내는
나무를 보며,
나의 소멸을 생각한다.
함께 공부하던 아이의 떠나감을 듣던,
8월의 마지막 날 이후,
간간이
가깝고, 먼 사람들을 떠나보낸 소식,
가깝고, 먼 사람들이 떠나간 소식을 듣는다.
홀로 세상살이를 견디어낼
누군가를 생각하다가
더 이상 그이가 불어주는 하모니카 소리를 함께 즐길 수 없음 이상의, 허전한
그이의 부재를 생각하며
슬퍼하다가는 곧,
나의 소멸을 생각하는 때를,
떠나간 소식이 올 때마다,
반복하며 맞는다.
생각에 생각이 이어지다 결국,
도착하는 곳은, 언제나 여기이다.
나와 한 공간에 머무는 아이들의,
성장한 그들의 완성된,
성숙한 모습을 함께 맞기 위해,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과정을 함께 걷고 있음을 본다.
나의 과정이 소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삶의 과정을 내가 걷다가
준비된, 혹은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어느 지점에서 유성처럼 사그라질 터...
이 과정을 정성스레 지내고 싶다.
감정의 격렬함조차 살아있는 증거의 의미로
위안이 되지 않는 날에도,
느긋함과 느슨함이 일상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날에도,
견디어 가며...,
완성의 의미가 완벽함이 아니라,
그 과정을 걷는 자체가 나라는 것을 인식하며,
보듬으며...
정성스레 이 과정을 지나고 싶다.
북소리, book소리.
우리의 모임 이름이다.
시인과 함께 했던 한 때,
시인은 스스로의 삶을 찾아 떠나시고,
우리는 여기에 있다.
10월을,
詩人이 남기고 간
詩月로 맞는다.
하여 시월에는,
어떤 시인이 여러 나라의 시를 모아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고,
그 시를 읽고 일어난 마음,
그 시를 쓴 시인의 이야기를 엮은 시집을 읽고, 둥글게 앉아 두런두런하는 시간.
마음에 담은 시를 읽거나,
시를 읽으며 다가온 마음을 이야기하다,
울렁이는 목소리에, 같이 눈물 흘린다.
덤덤하게 자신만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아이와의 사소한 일상 속에서
조우한 느낌과 맞닿은 시를 읽는다.
느티나무 낙엽을 밟으며
그 소리를 즐기고,
알록달록 단풍 그늘에 앉아
오늘 나눈 시집을 가슴에 끌어안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온기를 지닌 소박한 밥상 받아,
한 쌈 가득 서로 싸서
입에 넣어주며
우걱우걱 먹으며 웃기도 하는...,
이제,
주름진 얼굴,
노안을 맞은 눈을 가진 우리들의
가을, 詩月...
오늘
시들어가며 제 은은한 빛을 발산하는
구절초 옆에서 듣는
저녁 라디오,
가만가만 읽어주는 목소리.
들은 이야기 중 기억하는 구절로 맺는다.
“이 가을
애틋한 소유격으로
잠시,
위안을 삼아보자.
나의 영화,
나의 노래,
나의 음악,
나의 시간.
그리고,
나의 사람.”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인다.
아름다운,
나의 풍경...
언제나 나의 배경이 되어주는...
고마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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