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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58호> 산위에서 부는 바람 - 다시 바람을 맞겠지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3.

 

1.

어둠이 찾아온 밤. 먼 시간을 돌아 이 숲에 찾아왔다 다시 먼 길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는 길, 낙엽 위에도, 길 위에도 별이 내려 반짝인다. 바삭바삭한 겨울 밤길. 하얀 서리, 별 되어 떨어진 그 길 밟으며, 함께 걷는 동무가 있어, , 좋았다. (최고은님의 노랫말처럼) 이제 모든 게 다 제자리로 돌아온 듯한 충만함... 다시 먼 거리에서 떨어져 서로 마음안에서 만나며 살아가겠지만, 오늘밤의 충만함을 내 몸이 기억하기를...

2.

북어포를 무 삐진 것과 물에 불큰 호박고지를 함께 넣고 들기름에 볶다가 콩나물 한 움큼, 고추장 한 숟가락, 고춧가루 조금 넣어 한소끔 끓이면 구수한 국 한 그릇 완성된다. 강 할머니의 팔십년 넘은 겨울보양식 끓이는 방법을 설명하시다 한 번 와 끓여줄게 하시는 말씀에 뭉클, 울컥... 우리 사소한 일상을 나누는 순간들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나를 본다. 커피 타며 물 많이 주었다고 구박받아야 좋으니, 함께 공부한 것 배움터 문 나가기 전에 잊으셔도 좋으니 우리 만남 그저, 지속되기를 바라는 나를 본다. 슬프기 싫어서... 죽음이 팔십 훌쩍 넘으신 어머님들과 나의 만남을 갈라놓지 않기를, 자주 바라는 나를 본다. 이기적이다.

3.

서랍을 정리한다. 뭐가 많다.

책꽂이에 꽂힌 책을 바라본다.

뭐가 이리도 많다.

접시장에 들어있는 여러 크기의 그릇을 꺼낸다.

이야기가 담긴 그릇.

가장자리에 흠집이 있는 그릇.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먼지가 쌓여있는 그릇.

뭐가 무척 많다. 많이도 거두어들였다...

바느질해서 무언가 만들고 싶어 차곡차곡 사들인 천 조각.

으악, 언제 다 꿰매노...

문자보관함 속 발신문자, 수신문자를 정리한다

기억을 꺼내 다듬고 지운다.

올 한 해를 살아가면서 

마음에 내내 품고 싶은 문장.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안 사고 살아보자........

4.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 반납기일 전 날 서둘러 읽는 마음 말고, 새 다이어리에 식구, 친구 축하하고픈 날, 돌아간 사람을 기억하는 날 적는 설렘과 웃음띤 마음, 정성스런 마음으로 다시, 날마다 숨 쉬어지는 순간들을 살아가고자 한다.

비틀거리고, 주저앉고, 그러다 기운내 다시 일어서는 순간을 반복하며, 마음 뚝 떨어지는 날을 맞더라도, 우짜겠노, 살아있는데... 눈가에 깊은 주름을 볼수있음을 기뻐하며, 서리가 내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즐기며, 바로 눈앞의 것을 거리두고 보아야하는 사실을, 눈도 늙고 있음을 인정하며, 신체의 늙음을 서글퍼하기보다 아이들은 성장하고, 나는 늙고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들여다보고, 지혜롭게 늙어가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배우며 또 하루를 맞이하고, 살고, 또 맞고....

5.

시모와 함께 걸었다

시부 모셔놓은 가톨릭 묘지를... 

절 올리고, 기도 올리고 돌아오는 길.

오늘은 나, 내일은 너.

섬뜩해 보이던 문장이 그날은,

그저 잠언처럼,

지혜서의 말씀처럼 다가왔다.

마치 여기 제가 볼 수있는 것에 있어 주어서 고마워요에 담긴 마음처럼...

6.

사랑이 무언가 묻는 친구에게 그런, 짧은 문장을 보냈더이다.

사랑이라함은 그저 (선생님말씀처럼사랑덩어리로 살고 싶은 저의 소망...

사랑으로 애씀이 아니라 그저 사는 것이 

사랑이기를, 내가 숨 쉬어지듯,

사랑이 나를 존재하게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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